칼럼 · 기고 행복은 자기관리를 통해서 얻는 만족

[전병열 칼럼]행복은 자기관리를 통해서 얻는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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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열의 작은 행복]

인생은 현실과 이상 속에서 끝없이 다투며 내일을 맞이한다. 꿈만으로 살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낙천적인 삶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지만, 희망 없는 인생을 살 수가 없지 않은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화사하게 만개한 꽃길을 걷는 즐거움을 어찌 필설로 형용할 수 있으랴. 생각 없이 무심코 지나다닌 그 길이지만, 오늘따라 정겨움에 새삼 가슴이 뭉클한다. 화려한 벚꽃 춤사위에 이렇게 감명을 받아보는 건 기억에 별로 없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그만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화창한 휴일을 맞아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벚꽃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는 모습이 아름답고 평화롭다, 평소에는 상념에 잠겨 걷다 보니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었다. 오늘은 코로나 사태가 가져다준 여유이기에 고달픔을 묻고 ‘힐링’하고자 나선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If you can’t avoid it, enjoy it!)고 했던가. 코로나가 인간에게 생존경쟁의 탐욕을 잠시 멈추고 성찰의 기회를 준 것이라 생각하자.

파란 하늘 아래 수놓은 하얀 벚꽃 터널을 지나면서 그 향기를 음미하며, 잠시 옛일을 더듬어 본다. 35여 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을 때는 잡초만 무성한 산기슭이었다. 주변은 황량했고 인가가 드물었지만, 회색빛 도심을 피해 쾌적한 곳을 찾다 보니 이곳에 오게 됐다. 집 앞에 자리한 황령산 길목이 등산로로 연결돼 건강을 위해 선택한 것이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체육공원이 조성돼 주민들이 즐겨 찾는 놀이터가 됐다. 등산로가 잘 정비돼 심신을 힐링하기에는 안성맞춤으로, 살아 본 사람만이 아는 아늑하고 공기 좋은 살기 좋은 동네로 변했다.

체육공원에 조성된 벚꽃 숲을 지나 등산로를 따라 ‘바람고개’에 올라서면 땀방울이 맺히고 숨이 차지만, 확 트인 시야와 시원한 바람에 코로나로 누적된 스트레스가 말끔히 정화된다. 아직 산 중턱이지만, 잠시 숨을 고르다 보면 그간의 삶에 만감이 교차한다. 더 머물면 그대로 편한 하산 길을 택할 것 같아 정상을 향해 다시 길을 재촉한다.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니 약간 힘에 부치지만, 잡념은 사라지고 자신감과 의욕이 샘솟는다.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야, 핑계를 만들지 말고 또다시 해보는 거다,” 나약해지는 심신을 추스르고, 스스로 도전 정신을 촉구하면서 정상을 향해 전진한다. 힘든 만큼 쾌감이 배가 되는 게 등산의 묘미일 것이다.

운동도 인내와 성실함이 결여되면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라면 규칙적으로 지속해야겠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울 때가 더 많았다. 덜 급해서 그렇다며 아내의 핀잔을 듣기 일쑤지만, 운동도 일과로 수행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황령산 정상인 봉수대에 올라서면 천하를 품은 기분이다. 깊은 골짜기 숲속에 자리한 아파트와 은빛 물결을 이루며 펼쳐진 광활한 푸른 바다가 한 폭의 그림으로 절경을 이룬다. 한적한 곳을 찾아 가부좌를 틀고 머릿속을 비우면 심신이 안정되고 아늑해진다. 생각을 멈추고 실눈을 뜨면 이보다 더한 편안함이 없다. 불현듯 밀려오는 상념에 희망의 불씨를 피워 올리며 내일을 설계한다. 잡념에서 벗어나 긍정의 힘을 신념으로 굳히고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바다 위에 떠있는 함선이 조각배처럼 보이고 그 평화로움에 아련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가슴 아린 기억들도 물밀듯이 벅차올라 생각을 떨쳐버리고자 자리를 박차고 두 손을 번쩍 들어 심호흡을 해 본다. 지난 일에 사로잡혀 내일을 망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인생은 현실과 이상 속에서 끝없이 다투며 내일을 맞이한다. 꿈만으로 살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낙천적인 삶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지만, 희망 없는 인생을 살 수가 없지 않은가.

또다시 내일을 위한 새로운 희망을 품고서 유쾌한 걸음으로 하산 길을 걷는다. 휴일을 가장 알차게 보낸 것 같은 풍요로움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더욱 화사해진 벚꽃이 나를 반긴다. 코로나라는 괴물에 의해 피폐해진 일상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다 자연에서 이를 회복하고 힘찬 발걸음으로 또 내일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