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어머니의 땅

[전병열 에세이] 어머니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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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열 편집인 정치학박사(언론학)

“왜 그렇게 힘들게 해요. 고향 가면 힐링도 좀 하고 즐기다오면 안되나요? 매번 일만 하다 오니 피곤하고 가기 싫어요. 앞으로 당신 혼자 다니세요.” 아내의 푸념이 계속된다.

“2~3만 원만 하면 당신 가꾼 것 보다 훨씬 많은 부추를 살 수 있어요. 고생해서 거둔 수확이 여기 오는 연료비도 안돼요. 아이들조차도 당신이 힘들게 하는 일을 이해 못해요.” 아내의 말대로 소위 가성비를 따진다면 아주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나는 이 노동으로 인해 가치를 논할 수 없는 더 큰 보람을 얻고 있다.

빗줄기가 점차 굵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잡초 뽑기를 계속하자 참다못한 아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거들면서도 불만을 쏟아낸다. 나 역시 편히 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빗물에 흠뻑 젖고 팔다리가 저렸지만, 그대로 팽개칠 수가 없었다.

고향에는 부모님께서 경작하던 전답이 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로는 어머니 혼자서 가꾸던 논밭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끔 들려보면 고추, 부추, 상추, 배추 등 농작물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농사짓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늘 어머니가 계셨다. 고향에 들를 때마다 집에 안 계시면 그 논밭에서 일하고 계셨다.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면서도 일을 놓지 못하고 눈만 뜨면 논밭으로 나가셨다. 힘든 일 그만두고 그냥 편히 쉬시라는 간곡한 만류에도 한평생을 근면하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자식들의 만류가 부담스러워 말로만 승낙하시고는 몰래 논밭을 가꾸신 그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한 뼘의 땅이라도 놀리지 못하는 어머니의 그 깊은 뜻을 몸소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사정을 모르니까 미련스럽게 일만 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처럼 여유로운 휴일이라 고향을 방문했었다. 논밭을 부치던 사람이 갑자기 사고가 나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연락을 받은 터라 논밭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의 손길이 끊긴 논밭은 잡초만 무성했다. 그런데 황무지로 변해버린 잡초 속에서 부추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부추 사이로 난 잡초를 뽑는 순간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애써 가꾸시던 어머니의 ‘부추밭’이 불현듯 눈앞에 선하게 펼쳐졌다. 그곳에서 김을 매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어머니는 부추밭을 애지중지하셨다. 특히 부추 요리는 우리 가족 입맛에 맞는 일가견도 갖고 계셨다. 손바닥만 한 자투리땅에다 부추를 가꾸셨는데 얼마나 정성을 쏟으셨던지 항상 싱싱하게 자라 밥상을 풍성하게 했다.

그대로 부추밭에 허리를 굽히고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이 부추 고랑만큼은 직접 재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잠깐이면 될 줄 알았는데 오후 내내 매도 다 뽑지 못하고 빗속에서 지쳐가는 모습을 아내에게 보였던가 보다. 평소 하지 않는 일이라 능률도 오르지 않았고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생전에 그렇게 만류했어도 일을 놓지 못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악착스럽게 마무리했다.

“아빠 힘들어하면서 그 일을 왜 하세요. 효율성을 생각해보세요. 아주 비생산적인 일이에요. 요즘 시장에 가면 흔한 게 유기농 채소에요. 2~3만 원이면 충분히 살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비 맞아가면서 고생하세요. 몸살감기라도 나시면 병원비가 더 들어갑니다.”

아내의 연락을 받은 아이들의 전화가 불불이 왔었다.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도 아빠 심정을 이해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저 어머니 땅의 소중함을 그들도 헤아려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