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전병열 에세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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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열 발행인(언론학박사)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의 지난 3월 1일 자 시청률이 3.8%(543회)까지 올라갔다. 나도 여유로운 시간에 즐겨보는 프로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연한 주인공들은 대다수 자연이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 살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낸다. 진행자가 왜냐고 물어보면 생존경쟁으로 고통스럽지 않고, 간섭 받지 않고, 눈치 볼 일 없고, 자유분방하게 살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고, 아귀다툼의 생활 전선에서 전쟁을 치렀었다고 토로한다. 그런 와중에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끼거나 질병을 얻어 깊은 산속으로 피난 온 것이라며, 근심걱정 없는 인생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물론 그 내면에는 외로움이나 난관도 없지 않겠지만, 프로그램은 행복한 모습만 보여준다. 사회생활이 고달픈 이들은 그 생활이 부럽고 ‘나도 자연인이 되고 싶다’는 로망으로 자리 잡게 된다. 때로는 그 프로가 카타르시스가 되기도 한다.

인생은 꿈을 가지게 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도전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지난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꿈을 포기하면 좌절하거나 절망으로 삶의 의욕까지 잃고 방황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상대적 빈곤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흔히 마음을 비우라고 하지만 희망을 버린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면 비굴한 삶을 살아 갈 수도 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받은 사명(使命)은 의무다. 의무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를 버리면 인간이기를 포기 하는 것과 다름 없다. 생명이 있는 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인으로 돌아가면 인간이 아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생활은 인간의 당연한 의무이며, 그 의무는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을 멀리하고 자연과 살아간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포기하는 것이며, 이는 곧 인간의 사명을 버리는 것과 같다. 공동체 생활을 떠나서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은 생명은 있으나 인간다운 삶은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일순간 세파에 시달려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자연으로 도피한다면 사회 구성원의 자격을 상실 하는 것이다. 나 혼자만의 행복을 위해 마음을 비운다면 일시적으로 행복할 수는 있겠지만, 영원한 행복을 누리지는 못할 것 같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공동체를 망각해선 안 된다. 공동체 속에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혼자만의 행복이 아니라 인연이 닿은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야 꿀떡 같지만, 아직 인간의 사명이 남아 있다 보니 그 의무를 다하기까지는 현재의 상황을 벗어날 수가 없다. 사회생활이 힘들고 고달프다면 잠시 쉬었다 갈 수는 있다. 자연과 더불어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내일을 위한 충전이 될 수 있다. 물론 인연을 버리고 속세를 떠난 삶이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의무를 초월한 구도자의 길을 택한다면 보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보통사람으로서 행복을 누리려면 인간 본연의 사명을 이루는 것이다.

행복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의무에 만족하면 행복을 느끼게 된다. 사회생활에서 불만은 있을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난제가 상대적 박탈감이다. 비교 대상이 없다면 상대적 빈곤도 없다. 예로부터 ‘위를 보고 살지 말고 아래를 보고 살라’ 고 했다. 나보다 부족한 사람과 비교하면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간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사회생활을 포기할 수 없으며, 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박탈감·상대적 빈곤감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아래를 보고 사는 길이 그 길이다.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며, 이는 비교 대상이 자연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의무를 다하려면 피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야 하며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상대적 우월감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