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차욱진 /동아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위의 사진은 2026년 8월 26일 「한겨레 신문」 오윤주 기자의 기사에 실린 사진이다. 이 기사를 보자마자 나는 산림청이 정말 문제의 기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기후위기의 시대다. 올해처럼 숨이 턱 막히는 폭염과 열대야를 겪고 나면, 나무 한 그루의 의미가 결코 장식이나 조경 연출에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나무는 그늘을 만들고, 증산작용으로 주변 온도를 낮추며, 잎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탄소를 저장한다. 도시에서 가로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후위기 대응 인프라이자 시민의 생명 · 건강을 지키는 녹색 방패다.
그런데 청주시의 은행나무 가로수 41그루를 하트 모양으로 강하게 전정한 사례가 ‘우수한 가로수 관리’로 포상받았다는 소식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350m 가로수길의 나무를 보기 좋게 하트 모양으로 다듬었다고 한다. 사진을 찍고, 관광객을 부르고, 도시의 색다른 명소를 만들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하트가 나무의 생리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본질을 훼손한 결과라면, 이는 미관을 위해 공공자산을 소모한 일에 불과하다.

늘릴 수도 있다. 직경 5cm이상 가지의 절단은 부후균과 병해충 침입의 통로가 될 수 있으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수형은 자연스러운 구조를 약화시켜 장기적으로 수목의 건강과 안전성을 해칠 가능성도 있다. “예쁘게 잘랐다”는 평가가 나무의 건강성과 지속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더구나 산림청은 산림과 수목의 생태적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는 국가기관이다. 탄소중립, 도시숲 확대, 생활권 녹지 조성, 기후위기 적응을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잎을 대폭 줄인 강전정 가로수를 모범사례로 치켜세운다면, 정책의 방향은 스스로 충돌한다. 나무를 탄소흡수원과 폭염 완화 시설로 보지 않고, 사진 배경과 축제 장식물로만 취급하는 인식의 민낯이다.
가로수 관리는 필요하다. 보행·차량 통행을 방해하는 가지, 전선과 충돌하는 가지, 고사·병해충 피해 가지, 구조적으로 위험한 가지는 과학적 진단에 따라 적절히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관리의 원칙은 ‘나무를 보기 좋게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나무를 관리해야 올해처럼 폭염의 여름을 몇 일 이라도 줄일 수 있다. 잎의 양이 많아야 이산화탄소를 흡수, 저장하는 양이 많아진다.
산림청은 이번 일을 단순한 미관 관리의 성공사례로 넘겨서는 안 된다. 포상의 기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가로수 관리의 평가지표는 독창적 수형이나 사진 명소화가 아니라 탄소를 어떻게 하면 많이 흡수·저장할 수 있게 관리하느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나무의 활력 증진에 의한 탄소흡수 증진으로 도시 열섬완화 등을 지표로 삼아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나무를 하트 모양으로 깎아 놓고 잘한 일이라 칭찬하는 행정, 그것이야말로 가장 얼빠진 기후행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