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무너지는 인간관계, 관태기에 빠진 사람들

무너지는 인간관계, 관태기에 빠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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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관계는 갈등이 동반된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실감은 개인마다 천차만별로 느낀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인간관계 형성에 권태를 느낀다.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인간관계 즉 ‘관태기(관계+권태기)’를 느끼는 사람들을 칭하는 ‘관태족’라는 말이 등장했을 정도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불편하거나 귀찮아졌다면 이미 당신도 관태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지난달 갓 대학을 졸업한 이 모(26)씨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했다. 본격적으로 취업준비에 뛰어든 것도 원인 중 하나였지만, 무엇보다도 SNS활동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과의 관계도 서서히 줄이기 시작했다. 정말 친한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연락하는 사람이 없지만, 이 씨는 지금이 제일 편하고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인간관계의 권태기를 뜻하는 ‘관태기’는 이제 흔한 현상이다. 대면으로 만나는 상황을 꺼리는 것을 넘어, 연락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억지로 감정을 소모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다.

10년차 직장인인 강 모(35)씨는 “점심시간에 혼자인 편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회사 동료들과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점심시간조차 같이 밥을 먹는 것이 업무의 연장선인 것처럼 느껴져, 같이 밥을 먹는 멤버들과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합의한 것이다. 강씨를 비롯한 동료들은 덕분에 업무가 더 편안해졌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설문조사업체 엠브레인에 따르면 ‘나는 나홀로족과 가까운 편이다’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20대가 62%로 가장 높았다. 30대가 50.4%로 두 번째였다. 20대와 30대의 절반 이상은 자발적으로 혼자만의 삶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혼자 하는 편이 더 의미 있는 것처럼 바뀐 것이다.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는 행위를 혼자 즐기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나 혼자 산다’를 외치는 이유 중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은 ‘인간관계 스트레스 증가’였다.

20대에게 관태기는 이미 일상이다. 취업 준비와 학업 등 각자의 삶을 살기도 바쁘다고 느끼며,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인간관계에 신경 쓸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다고 느낀다.

30대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회사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 부담을 느끼고, 회식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40~50대 역시 한 번뿐인 인생에서 인간관계에 집착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부질없다며 회의감이 드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직장인 대다수가 직장생활을 하며 번아웃 증후군을 겪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번아웃 증후군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달 29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직장인 492명을 대상으로 ‘번아웃 증후군’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5.1%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들이 번아웃 증후군을 겪은 이유는 ‘일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워라밸이 안 좋아서(46.2%)’, ‘매일 반복되는 소모적인 업무에 지쳐서(32.5%)’, ‘인간관계에 지쳐서(29.3%)’ 등 업무 및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번아웃 증후군을 극복한 직장인은 전체중 23.6%로 4명중 1명에 그쳤다. 알바몬에 따르면 인간관계를 최소화하며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이들도 절반에 달한다.

이런 현상은 한국사회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각자도생이 일상화되면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심리적·경제적·시간적 여유의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먹고 사는 일이 힘들면 인간관계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미혼과 만혼이 증가하고 이혼율마저 높아져, 1인가구가 증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와 같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소비패턴도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2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인구변화에 따른 소비시장 新풍경과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2000년 15.5%에 불과했던 1인 가구 비율이 지난해 28.6%로 늘면서 외식과 조리식품을 선호하는 나홀로 소비로 대체된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가격이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고, 편의점 간편식 같은 품목의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1인가구 비율이 이미 2000년에 27.6%에 달했고, 최근에는 34.5%로 늘어난 일본에서도 대형소매점(백화점+슈퍼마켓) 매출은 줄어든 반면, 편의점 간편식 매출은 2007년 2조7,086억엔에서 지난해 4조4,231억 엔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는 식품 및 요식업 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은 크기로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형가전이 각광받고, 소형아파트보다 더 작은 50㎡ 미만의 꼬마아파트의 인기도 치솟고 있는 것이다.

저렴한 가격에 혼자 살면서도 필요할 때는 타인과 함께할 수 있는 ‘셰어하우스’도 점차 늘고 있다. 독립된 공간을 추구하면서도 고립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셰어하우스에서 내가 원할 때만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독립과 교류 사이에서 적당히 줄타기를 하며 생활하고 있다.

호텔업계도 다양한 1인 패키지 프로그램을 내어놓고 있다. 혼자서도 근사하게 호텔에서 숙박하거나, 호텔 레스토랑에서 혼밥이나 혼술을 즐기라고 유혹한다.

혼자하는 여행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렵게 여행 메이트를 찾고, 일정을 맞추는 것보다 혼자 떠나는 것이 더 간편하고, 그 편이 일상에서 더 확실하게 떠나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글로벌 여행사인 트래블 리더 그룹의 조사에서 전체 여행객의 36%는 향후 솔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할 정도다. 익스피디아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행객 사이에서도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중인 사람들이 24%에 이를 정도로 꽤 많은 여행을 차지하고 있다. 여행자들은 점점 패키지 여행에서 등을 돌리고, 개인화 되는 여행을 더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홀로 여행은 여행지에서 발생할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오롯이 혼자서 감내해야 한다는 리스크가 있다. 일본의 여행사에서는 이 같은 나홀로 여행족들을 위해 ‘히토리사마 한정’ 단체여행을 선보여,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선보여 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의하면 최근에는 젊은층보다 장년층이 더 많이 참가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나홀로 한정 단체여행 상품은 한국의 여행사에서도 선보이고 있다. 여행사에서 교통편과 숙소예약을 해주고 가이드도 따라붙는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점은 일본의 경우 ‘혼자서만’ 신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단위로 각각 신청하거나, 다른 여행에서 친해진 사람과 함께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참가자들끼리 친한 분위기가 형성되면 다른 참가자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도 필요한 경우 외에는 말을 걸지 않을 정도다. 혼자서 버스 좌석 2개를 사용하고, 호텔도 싱글룸 배정이 많아서 일반 패키지여행보다는 비싸지만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관태기. 지금은 비교적 젊은 세대에 퍼져있지만, 중장년층과 노년층, 청소년층까지 더 확산될 것이다. 물론 인간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현상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선에서 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건강한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