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빈곤포르노vs마을발전, 슬럼투어 논란

[이슈추적] 빈곤포르노vs마을발전, 슬럼투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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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인디밴드 멤버가 유명 TV프로그램에 출연해 가난한 일상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의 집안이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것만큼 가난하지 않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비난의 중심에 서게 됐다. 가난을 이용해 타인의 동정과 호감을 사고 이목을 끌어 수익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빈곤포르노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가난을 상품화해 돈을 버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중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것이 바로 슬럼 투어(Slum Tour)다.

‘슬럼(slum)’은 삶의 질이 낮으며 오염되어 있는 쇠락한 도시, 또는 한 도시의 한 지역을 의미한다. 산업화와 도시화과 이루어지고 대도시가 등장함에 따라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우리나라의 달동네, 인도의 다라비, 리우데자이네루의 호싱야, 케냐 나이로비의 키베라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슬럼 투어는 이 같은 지역을 둘러보는 ‘체험 여행상품’이다. 기존의 과장된 관광 상품과 달리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며 많은 여행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현지에서의 생생한 체험을 위해 슬럼가 주민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거나, 슬럼가의 아이들이 노는것처럼 공터에서 축구하기 등 세부적으로 상세한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도 있다.

슬럼 투어는 생각보다 그 역사가 깊다. 19세기 후반 런던과 뉴욕의 부유층들이 자선을 명분으로 런던 이스트사이드 빈민가와 뉴욕 파이브포인트 등 슬럼을 찾아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찰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 중 런던과 뉴욕의 슬럼가를 비교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을 위해 처음으로 슬럼 투어 여행사가 생겨났고, 당시 슬럼 가이드책자까지 제작될 정도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1980년대 백인들이 ‘흑인의 삶’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슬럼 투어가 만들어 졌고, 인종 분리 정책을 지지하는 인종차별주의자적 외국인 관광객이 합세하며 호황을 누렸다.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방식의 슬럼 투어는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의 호싱야에서 1992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호싱야는 남미에서 가장 큰 슬럼가 중 하나로, 호싱야를 투어하는 사람은 연 4만 명에 달하며,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에는 50만 명이 몰려들 정도로 엄청난 인기였다.

아시아 최대 빈민촌인 인도 뭄바이 다라비에서는 아예 하룻밤을 묵는 숙박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다라비에서 슬럼 투어를 운영중인 여행사 ‘리얼리티 투어’는 다라비 출신의 인도 청년이 외국인과 함게 세운 사회적 기업이다. 투어를 시작하기 앞서 되도록 사진 촬영은 자제하도록 안내하며, 투어 수익의 80%는 마을 발전을 위해 기부된다. 기부된 수익으로 플라스틱 재생, 봉제, 도자기, 베이커리, 가죽 제작 등의 생산적인 산업들을 발전시켜,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해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슬럼 체험 관광 프로그램이 등장한 적이 있다. 2015년 인천시 동구청은 ‘인천시 동구 옛 생활 체험관 설치 및 운영 조례’를 입법 예고했다. 외부인이 괭이부리마을 쪽방촌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마을 내에 체험관을 만든다는 것이 골자였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쪽방촌인 괭이부리마을은 김중미 작가의 유명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마을이다. 논란이 된 체험 상품은 단돈 1만원으로 쪽방촌 체험을 하며 숙박을 하는 것이다.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 안으로 여행을 끌어들이는 것도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침해하는 일인데, 심지어 주민 동의도 얻지 않고 조례를 입법 예고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쪽방촌 주민들은 체험관 건립 반대 서명서를 제출했고, 결국 구청은 이 사업을 백지화 시켰다.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같은 사건은 또 발생했다. 2017년 서울시 중구청은 대학생 쪽방 체험 프로그램인 ‘캠퍼스 밖 세상 알기-작은방 사람들과 마음 나누기’ 사업 시행 계획을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대학생들이 쪽방촌에서 2박3일 간 지내며 주민들의 어려움과 고충을 공감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쪽방촌 주민 대부분이 이런 사업이 진행되는 것조차 몰랐다는 것이 문제였다.

슬럼 투어는 논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슬럼 투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슬럼 투어가 빈곤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인도 다라비 마을의 슬럼 투어 여행사 ‘리얼리티 투어’의 매니저가 “더럽고 범죄가 만연하다는 슬럼가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하고, 현지 주민들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힌 것처럼, 가난에 대한 편견을 완화하는 효과가 어느 정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슬럼 투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 과정 속에서 ‘가난한 사람’을 객체화 한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슬럼’이라는 이름 자체가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외부에서 만들어진 명칭이며, 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슬럼’에서 벗어나기 못할 것이라는 인식을 주며, 주민들에게 소외감과 박탈감을 안겨주는 주홍글씨라는 것이다.

가난을 상품화하는 ‘빈곤 포르노’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뉴욕타임지의 기고에 의하면 케냐 나이로비의 빈민가 키베라에서 자란 케네디 오데데는 “관광객들은 이틀동안 굶주린 나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들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우리는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빈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분명 있지만, 그것이 슬럼 투어는 아니다”고 꼬집었다.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 호싱야 지역연합 UPMMR의 대표는 윤리적 관광을 위한 시민단체 투어리즘 컨선에서 “여행객들은 호싱야가 아니라 호싱야를 착취하는 여행사 사장들을 돕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슬럼 투어는 결국 인권 문제로 이어진다. 빈민가 주민들의 삶을 느끼는 것이 아닌, 수박 겉핥기처럼 관찰할 뿐이라는 것이다. 짧은 여행과 체험을 통해서는 주민들을 진심으로 공감할 수 없으며, 그저 가난한 빈민가 주민들을 관광이라는 이름 하에 구경거리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된다는 논리다.

박완서가 1975년 발표한 소설 ‘도둑맞은 가난’에는 가난에 온 가족을 잃은 어린 여공이 등장한다. 비슷한 처지로 알고 동거했던 상훈이 가난 체험에 나선 부잣집 대학생이라는 걸 알고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부자들이 가난을 탐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에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 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결국 우리에게 직면한 문제는 윤리다. 슬럼 투어에 대한 찬반이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윤리적으로 관광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