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타임머신을 타고 고령 대가야 역사 속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고령 대가야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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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모든 것을 무화(無化)시킨다.
인간의 치열했던 삶도, 사랑도, 옛 왕조의 영화도 가공할 만한 시간의 위력 앞에 온전히 남아있지 못한다. 특히 가야의 역사와 마주할 때 그런 생각은 더욱 깊어진다.
고령은 후기가야연맹을 주도적으로 이끌던 대가야의 도읍지였다. 한반도 여명기에 역사와 문화를 이끌어갔던 이들이 살던 옛 터전이다. 찬란하게 꽃 피웠던 가야의 옛 명성은 그러나 시간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그래도 남을 것은 남아 우리에게 옛 대가야의 자취를 말없이 전한다.
고령은 망각의 대지 위에 솟은 옛 무덤을 통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가야시대로 초대하는 곳이며 차분한 유물들로 우리의 발길을 조용히 이끄는 곳이다. 고령에 도착한 순간 당신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들어선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망각의 대지 위에 솟은 무덤, 지산동 고분군
지산동 고분군(사진_고령군)

고령의 봄은 지산동 고분군으로 올라가는 산자락에서 느낄 수 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따사로운 봄 기운을 받아 말랑말랑해진 것을 운동화 뒷축으로 느끼며 올라가다보면 산자락을 타고 200여기의 가야고분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산동 가야고분군이다. 능선 위에 조성된 고분군의 모습은 ‘왕릉의 능선’이라고 불릴 만큼 환상적이다.

가야시대의 무덤은 신라와는 달리 평지가 아니라 능선 위에 조성됐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평야가 적은 고령의 특성상 농지의 확보를 위해 그렇게 된 것이라는 설과 왕릉의 품격을 더욱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사람의 삶은 이승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로 이어진다는 계세사상(繼世思想)에 따라 하늘에 좀 더 가까운 높은 곳을 선택해 주검을 안장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마치 등대처럼 무덤에서 가까운 하천을 따라 나 있는 뱃길의 길잡이 구실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산 위에서 마을 주민을 호령하고 다스리고 있는 듯한 고분군의 모습은 자못 웅장하고 위풍당당하다. 하지만 완숙한 여인의 몸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인해 권위적이고 고압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무덤을 감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산동 고분군은 죽음이라는 무겁고 어두운 그림자를 지워버릴 만큼 아름답고 평화롭다.

지산동 고분군의 형성을 보면, 위쪽으로 오를수록 무덤이 크고 오래된 것을 볼 수 있다. 아래쪽은 봉분의 형체가 없어진 것이 많으며 있어도 크기가 작다. 중간 지역은 봉분의 크기가 중간 크기이다. 능선 마루에 오르면 봉분의 지름이 20m 이상 되는 대형분이 나타난다.

특히 44호분과 45호분이 절정을 이룬다. 44호와 45호 고분에 다다르면 멀리 고령의 들과 산이 보이고, 마을들이 발 아래 납작하게 엎드린다. 능선 마루에 서서 먼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서 있노라니 멸망한 옛 왕궁의 위엄과 전설이 바람에 섞여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지산동 고분군은 그렇게 천 마디 말보다 무거운 침묵으로 옛 대가야의 실체를 보여준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회의에서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돼 올해 1월에 유네스코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다.

대가야 문화를 한 눈에, 대가야박물관
대가야박물관(사진_고령군)

대가야를 비롯한 고령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전시한 대가야사 전문박물관으로 대가야역사관, 대가야 왕릉전시관, 우륵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가야 왕릉전시관은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殉葬)무덤인 지산동 고분군 제 44호분의 내부를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순장무덤이란 부족장이나 왕이 죽었을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을 함께 매장해 죽어서도 생시와 같이 시중들고 생활하도록 하는 무덤을 말한다. 대가야 왕릉전시관은 다른 전시관과는 달리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데 이는 순장이라는 문화가 우리에게 호기심과 흥미를 강하게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여름에는 얼음을 채워둔다. 사람을 죽여 순장을 하는데 많은 때는 그 수가 백여 명에 이른다’(삼국지). ‘즉위 3년 봄, 삼월에 영을 내려 순장을 금하도록 했다. 이보다 앞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각 다섯 사람을 순장했는데 이때에 이르러 금지했다’(삼국사기). 두 사서의 기록들은 우리 고대시대의 순장 풍습을 잘 알려주고 있다. 지산동 고분군은 사료(史料)로만 전하던 순장제도가 실재했음을 증언하는 중요한 역사 유물이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니 실제 무덤에 들어선 듯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곳에 들어서면 체험터널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선 44호 고분을 보다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왕이 묻힌 주석실을 비롯해 그 둘레에 왕을 호위하듯 빙 둘러서 있는 석실이 여러 개 있는데 거기 묻힌 사람들은 어린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유물전시관엔 사람뿐 아니라 대가야 유물인 금관과 금귀걸이, 목걸이 등의 장신구와 토기, 갑옷과 투구 등이 함께 전시돼 있어 화려했던 가야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릇 안에는 고둥, 생선뼈, 닭뼈 같은 음식들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 왕이 죽었을 때 제사를 지내고 그것들도 모두 함께 묻었음을 짐작케 한다.

우륵박물관(사진_고령군)

우륵박물관은 가야금을 창제한 악성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수집·보존·전시해 국민들이 우륵과 가야금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건립한 ‘우륵과 가야금’테마박물관이다.
우륵의 생애와 가야금의 기원에 대한 영상, 그래픽과 가야금, 아쟁, 해금 등 전통 국악현악기를 비교 전시해 두었으며, 악기의 소리를 직접 청취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하여 현장학습과 관광코스로 더없이 좋다.

개실마을에서 맞이한 특별한 하루
개실마을(사진_고령군)

개실마을은 조선중엽 영남사림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 후손들이 350년 동안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 뼈대 있고 법도 있는 ‘양반 마을’이다.

화개산 기슭에 점필재 종택이 보인다. 1800년경 건립해 1878년 중수한 이 고택엔 지금도 선산 김씨 문중공파 종가의 종손이 살고 있다. 고택 안으로 들어서니 ‘ㅁ’자 형의 고택의 정갈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양반의 종가여서일까. 기와 하나, 기둥 하나에도 꼿꼿한 양반의 정신이 흐르는 듯하다. 요즘 세상에 아직도 ‘불천위 제사’(신위를 영구히 모시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제사)를 지내는 종가 마을이라고 하니 시간이 350년 전에서 그대로 멈춘 듯하다.

마을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지금은 그래도 세상 참 많이도 좋아졌단다. 예전엔 마을의 법도가 얼마나 시퍼렇던지 여자들은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양반 집안의 며느리로서 막중한 책임감에 허리가 휘도록 일 하느라 청춘이 가는 줄도 몰랐다고.

개실마을이 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왔던 전통 한과와 엿과 같은 음식문화와 양반의 예절문화가 새삼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잊혀진 옛 정신문화가 그대로 살아있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덩달아 마을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동안 며느리로서, 어머니로서 감내해야 했던 마음 속의 한을 풀듯이 쿵쾅거리며 행사를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옛 전통문화를 알리는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매년 봄이면 딸기수확 체험행사가 열리는데 주말이면 관광객 500~600명이 모여들 정도로 성황을 이룬단다. 일단 딸기 비닐하우스에 들어갔다 하면 마음껏 딸기를 따먹을 수 있는데다 500g들이 한 팩을 포장해서 갖고 갈 수 있다. 딸기를 따는 재미도 쏠쏠한데다 딸기 맛도 좋으니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고. 친환경 무농약 딸기라 따자마자 먹어도 안심이다.

전통 엿 만들기 체험행사도 인기 만점이다.
개실마을에서는 지금도 장작을 때어 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8~10시간 엿을 고아낸다. 쌀을 익혀 엿기름으로 삭힌 즙액을 농축하는 과정이다. 엿 재료를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꽈배기 모양으로 꼬아댄다. 이 과정에서 공기가 들어가면서 엿은 투명한 색에서 뽀얀 색으로 변한다. 전통 엿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엔 개실마을 부녀자들이 그동안 갈고 닦아온 인내심과 참을성, 정성과 예절이 그대로 녹아 있다.

마을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한과 만드는 재미도 쏠쏠하다. 유과·강정·다식·정과 등 원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마을 노인들로부터 직접 짚을 꼬아 계란꾸러미를 만드는 짚풀 공예도 배울 수 있고 다양한 전통 문화를 즐기고 배울 수 있다.

마을을 다 둘러본 후엔 마을에 자리한 100년 넘은 한옥에서 민박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밤이면 오래된 나무 냄새를 맡으며 편안히 잠을 청하고, 아침이면 자명종 대신 닭 우는 소리와 따사로운 햇살이 잠을 깨우는 특별한 하루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소미 기자 lsm@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