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진인사대천명으로 화를 다스리다

진인사대천명으로 화를 다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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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열 발행인(언론학박사)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인생관으로 살고 있다. 불가능은 없다고 호기를 부리다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부터다. 용기를 북돋우고, 도전 정신을 키우며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Yes, I can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쳤던 시절엔 불가능을 모르고 살았다. 안 되는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시 시작해 이루어 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들이 빈번해지면서 실망하고 좌절하거나 울분을 삭이지 못해 고민하기도 했다. 본인의 실수나 능력 부재로 실패했을 때는 보완하고 개선해 나갔지만,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일어났을 때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상실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억울하기도 했지만, 인간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일들이라 그대로 당하면서 울분만 쌓였었다. 하지만 결국 운명이라 자위하며.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운명이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는 운명으로 치부해야지, 절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부터 진인사대천명을 철학으로, 낙천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 자기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운명에 따르겠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와는 별개로 천재지변이나 재난을 겪으면서 운명에 맡기자는 생각이 확고해진 것이다.

명예나 권력, 금력으로도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지금도 도처에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터지고 있다. 이를 불안하게 받아들이면 편한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 천재지변이나 재난이 많을수록 종교의 힘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운명이기에 신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다. 미래는 신의 영역이기에 인간의 힘으로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미래를 신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예단할 수 없는 일이기에 차라리 미래를 염려하지 말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보자는 것이다. 그 성패는 신의 영역이기에 순종하는 길이 화를 다스리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도모할 때 마음대로 안 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 울화를 스스로 해소해야 하므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격언을 되새기며 참고 지낸다.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며, 진인사대천명을 되뇌기도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나만의 인생 해법이다.

지난 주말 넷플릭스에서 삼국지(극장판)를 보면서 새삼 그 어원을 떠올리는 계기가 됐다. 삼국지의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삼국시대에 유비의 촉나라가 오나라와 연합하여 위나라와 적벽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장면이다. 명장 관우는 제갈량으로부터 위나라의 조조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예전에 그에게 신세 진 일이 있어 차마 죽일 수 없었다. 결국 관우는 화용도에서 조조의 군대를 포위하고도 퇴로를 열어 달아나게 했다. 제갈량은 다 잡은 적장을 살려준 관우를 처형하려 했지만, 유비의 간청으로 그를 살려주면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쓴다고 할지라도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하늘의 명을 따를 뿐이다”라고 토로한다. 조조가 죽을 운이 아니기 때문에 살았다는 것이다.

모사재인성사재천(謨事在人成事在天)이라는 성어도 나온다. 명나라의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고사다. 촉나라의 제갈량이 숙적인 위나라의 사마의와 사투를 벌이던 때, 제갈량은 호로곡이라는 계곡으로 사마의의 군대를 유인하고 불을 질러 군대를 몰살시키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사마의 부대는 살아날 수 있었다. 이에 제갈량이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며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 달렸으나 일을 성공시키는 것은 하늘에 달렸도다”라고 한탄한다. 진인사대천명을 다시 음미해 본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