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죽암 전명운 의사 70주기 추모식 개최

[문화관광뉴스] 죽암 전명운 의사 70주기 추모식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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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앞잡이 미국인 외교고문 스티븐슨 처단
– 국립 서울 현충원 250여 명 참석 추모

지난 18일 국립 서울 현충원 현충관에서 죽암 전병운 의사 70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이날 추모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과 전상수 국회수석전문위원, 보훈처, 광복회, 담양전씨 문중 대표자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전명운의사기념사업회(회장 전무진)’가 주관하고 국가 보훈처와 광복회가 후원한 이날 행사는 한국독립동지회 윤재희 부회장으로부터 전 의사에 대한 약전 보고와 피유진 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에 이어 박유철 광복회장의 추모사가 낭독됐다.

이어서 담양 전 씨 문중인 설정 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나라사랑 정신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전 의사님을 후손으로서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 한다”면서 “그 정신을 이어 받아 평화롭고 희망이 넘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우리 후손들이 일익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추모사가 끝나고 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정재우 박사로부터 전 의사의 의열 투쟁과 연해주 활동에 대한 특강이 이어졌다. 다음은 특강 요약.

전명운 의사는 1884년 서울 종현(현 명동성당 부근)에서 태어났다. 20대 초반에 일본인들이 한국인 부녀자를 희롱하는 것을 목격하고 혈기에 못 이겨 이들을 구타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일본 관헌의 추격을 받게 된 전 의사는 상하이를 거쳐 하와이에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다가 학업을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거처를 옮긴다. 이곳에서 미주의 항일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해 기관지인 ‘공립신보’ 6인 발기인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한다. 청년 전명운은 일제의 침략에 남달리 울분을 토하며 국권 회복을 다짐하고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일제는 1904년 한일 강제 협약으로 고문정치를 자행하면서 미국인 스티븐스를 대한제국 외교고문으로 임명한다. 스티븐스는 ‘을사늑약(1905.11.)’과 ‘정미7조약(1907.7.)’ 등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에 적극 동조한 친일 매국노였다. 그의 식민지 정당화 관련 망언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격분한 공립협회와 대동보국회 회원들이 발언 취소를 요구하며 항의하게 된다. 그러나 스티븐스이 오히려 한국을 모독하자 이에 격분한 회원들은 그를 구타하고, 이 소동으로 스티븐스는 워싱턴으로 떠나게 된다.

이에 전 의사는 “금일의 사태를 보건대 병력으로 대적할 수는 없는 고로 세부득이(勢不得已) 총살의 계교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그해 3월 23일 전 의사는 이를 결행한다. 스티븐스가 워싱턴으로 출발하기 위해 페리부두에 도착해 자동차에서 내리는 순간 권총 방아쇠를 당겼지만 불행히도 불발되자 전 의사는 돌진해 권총 개머리로 가격한다. 스티븐스가 넘어졌다 일어나는 순간 장인환 의사가 3발의 총을 발사해 2발이 스티븐스를 명중시키고 1발이 전 의사 어깨를 관통했다. 전 의사와 스티븐스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틀 후 스티븐스는 사망한다. 그 후 전 의사는 재미교포들의 도움으로 97일 만에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아 보석으로 출소한다.

전 의사는 ‘한인공동회’ 주선으로 러시아 연해주로 거처를 옮겨 독립운동을 계속한다. 특히 공립협회에 가입한 안중근 의사와는 같은 숙소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등박문 처단 의거 혐의의 수배를 피해 전 의사는 다시 샌프란시스코롤 돌아온다. 전 의사는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 맨티카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돼 3·1운동을 후원하는 등 평생을 독립운동으로 헌신한다. 조국 광복의 기쁨을 잠시 누렸으나 정세가 여의치 않아 귀국하지 못하고 미루다 1947년 11월 18일 로스엔젤리스에서 향년 63세로 서거했다. 이날이 서거 70주년이다.

강연 후 전명운 의사가 직접 작시한 전명운 애국가가 참석자 전원의 합창으로 제창됐다. 전명운 애국가 제창 후 유족 대표로 전 의사 사손인 전의식 (담양전씨대종회 사무총장) 씨가 분향 · 헌화하고, 설정 스님이 뒤이어 분향 · 헌화했다. 이어서 전무진 기념사업회장을 비롯한 내·외빈들과 담양전씨 종친회 대표들이 차례로 헌화했다.

전무진 기념사업회장의 경과보고에 이어 추모식은 현충원 의장대의 조총 발사와 전의사에 대한 묵념으로 성료됐다.

글·사진 전병열 기자 chairman@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