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흉물이 된 애물단지, 공공미술 어디로 표류하나

흉물이 된 애물단지, 공공미술 어디로 표류하나

공유

강남구의 한 기업에 근무하는 A씨는 회사 앞 조형물을 볼 때마다 흉물스럽다고 생각했다. 높이 2m가량의 조형물은 언제 청소를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만 먼지에 뒤덮여 있었고, 조형물 밑에는 담배꽁초와 종이컵, 전단지들이 가득했다. 때때로 조형물에 불법 광고가 붙어 있을 때도 있고, 잡상인이 와서 좌판을 펼쳐놓고 장사를 했다. 누군가 침을 뱉은 자국과 껌딱지까지 흉물스럽게 남아있었다. A씨는 “건물의 미관을 위한 공공미술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되레 미관을 해치기만 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공공미술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은 비단 하루 이틀 사이의 일이 아니다. 관리가 엉망이거나 주변 환경과 조화되지 못하고 거리의 풍경을 해치고, 심지어 보행에 불편을 주기까지 한다.

미술품이 인도 위에 있어 행인들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건물 입구와 지나치게 인접해 있어 화재와 같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소방차의 접근이 어려운 곳도 있다. 단조로운 도형이나 그리스풍 기둥 등, 주변 주거와 어울리지 않는 것도 수두룩하다. 작품설명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의미를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시민들은 “형식적으로 설치하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구색 갖추기 급급

공공미술품들은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설치된다. 연면적 1만㎡ 이상의 건축물은 건축비의 0.7% 이상 가치가 있는 미술품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시민들이 좀 더 예술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는 취지다.

하지만 대부분 건물주들은 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색 맞추기에 급급할 뿐이다. 공공미술품 설치비용을 단순한 세금처럼 여기고, 한 번 설치한 뒤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중 소수는 비용에 맞춰 작품을 브로커에게 의뢰하기도 한다.

조형물에 낙서가 돼 있거나, 조형물 일부를 간판과 같은 다른 물건이 가로막는 등, 훼손된 공공미술품은 건축주가 원상회복 하도록 지자체장이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건축주가 이를 따르지 않아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기에, 흉물로 방치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에 있는 공공미술품 3천여 개 중 180여 개가 훼손됐고, 대구 동성로 통신골목 삼거리에 8억 원 예산을 들여 설치된 ‘미디어 아트 조형물’도 철거됐다.

 

창작활동 장려 의미 미비해져

공공미술품에 대한 지자체의 심의 절차가 있긴 하지만,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보통 건물 막바지 공사 단계에서 심의가 진행되고, 준공일자에 맞추려다 보면, 제대로 심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작품 수는 많지만 담당자가 소수다 보니, 후속관리가 되지 않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996년 충북 청주의 H빌딩에 준공된 브론즈 조형물은 창작자의 동의 없이 옮겨져, 작품 안내판도 없이 방치된 상태다. 당시 제작비가 3억 5천만 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던 조형물로 화제가 됐지만, 창작자는 계약금 5천만 원만 받은 뒤 IMF 이후 잔금을 받지 못한 상태다.

공공미술품 제작과 관련한 후진적인 나눠먹기 관행은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문화예술진흥법 취지는 공공미술 영역 확대와 함께 예술가의 활동을 진흥한다는 데 있지만, 작품 발주 과정이 공정하지 않아 작가들이 부당한 일을 당하기 일쑤고, 브로커의 개입도 늘어났다. 조형 미술계 관계자는 “예산 중 30%는 건축주, 20%가 브로커, 나머지 50%가 작가의 몫”이라고 말했다.

조형물 제작에 다양한 작가들이 참여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공공기관에서는 일정한 응모 기준을 두고, 민간에서도 기획사를 통하지 않고 개인의 작품을 수주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때

공공장소에 설치된 공공미술품은 꾸준히 관리해주지 않으면 흉물이 되기 십상이다. 이에 호주에서는 공공미술품에 대해 ‘30년 일몰제’를 시행하고 있다. 건물도 작품도 30년의 시간이 흐르면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작품의 존속과 이동, 폐기 여부에 대한 판단을 그 시점에서 행한다.

2011년부터는 건축주의 선택에 의해 작품을 설치하는 대신 문화예술진흥 기금으로 납부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출연 기금은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다양한 공적 사업에 쓰인다.

망치질하는사람(독일)

대표적인 작품 사례로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에 설치된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망치질 하는 사람’과 포스코 빌딩 앞에 설치된 프랭크 스텔라의 ‘아마벨’을 들 수 있다. 천천히 움직이며 망치질 하는 동작을 하는 ‘망치질 하는 사람’은 기업 빌딩과 정부기관이 밀집한 도심 속에서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표현하며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아마벨’은 고철로 만들어진 꽃 형상 작품으로, 철강기업 포스코의 이미지를 한층 더 높였다.

건축 공공미술 시장은 연간 7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큰 시장이다.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그 자체로 도시 관광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 작품의 질이나 주변 환경과의 조화는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들어선 조형물이 넘쳐나는 지금. 시민에게는 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작가에게는 창작 기회를 제공하는 공공미술. 함께 공유하겠다는 시민 의식과 함께, 자치단체에서 시민의 문화적 재산을 지속적으로 관리·감독해야할 때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