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자살 보도 권고기준을 명심하자

[전병열 칼럼] 자살 보도 권고기준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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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권고 기준의 준수는 물론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예방에 비중을 둔 자살 보도를 해야 한다”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부터 지난 5월까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라는 오명을 기록하고 있다. 2016년 한국의 자살률은 25,6명이었으며, 사망자 수는 1만 3,092명으로 하루 평균 36명이다. 이는 OECD 37개국 평균 11.8명의 2배를 넘는다,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를 말한다.

문제는 언론의 자살 보도가 모방 자살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1974년 발표한 논문에서 사람들이 미디어가 전달하는 자살 방법을 학습하고 이를 모방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후 일반인의 자살이 증가하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베르테르 효과’라고 명명했다. 독일의 작가 괴테가 펴낸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인 베르테르가 권총으로 자살을 하자 유럽에서 이를 모방한 청년들이 증가했는데 이 현상을 나타낸 이름이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난 사례들이 있다.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자살예방 국가 행동 계획’을 보면 2008년 10월 한 유명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부터 두 달 동안 자살자가 3,081명이나 나왔다. 전년도 같은 기간 1,807명보다 크게 증가했다. 또한, 2008년 9월 한 남자 연예인이 번개탄을 이용해 자살한 직후 두 달 동안 같은 방법으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99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10명보다 무려 10배 정도였다. 이후 가스 중독에 의한 자살자는 2007년 93명에서 2015년 2207명으로 폭증했다. 이는 자살 방법이 언론 보도를 통해 확산된 결과로 인한 모방 자살로 추정할 수 있다.

미국 사회학자 스티븐 스택은 2000년 연구 논문을 통해 “연예인이나 유명 정치인의 자살은 평범한 사람들의 자살보다 후속 전염성 자살로 이어질 가능성이 14.3배 높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민은 뉴스를 통해 이들의 자살을 알게 된다. 언론이 자살도구와 방법, 장소 등을 구체적으로 보도해 일반인들의 모방 자살을 부추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에게 언론의 자살 보도가 크게 영향력이 미쳤다는 연구와 사례들이 입증되고 있지만, 시청률이나 구독률 · 접속률에 목맨 언론들은 선정적인 보도로 일관한다.

지난달 노희찬 정의당 의원이 사망한 사안을 두고 언론은 최악의 자살 보도를 경쟁적으로 감행했다. <TV조선>은 오후 1시께 노 의원의 주검 이송 장면을 구급차를 쫓아가며 생중계했다. 화면 아래엔 “고 노회찬 의원 시신 병원 이송 중”이라는 붉은색 자막이 선명하게 보였다. 카메라는 구급차 창문을 클로즈업하기도 했고, 프로그램 진행자는 “본인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한다”, “충격적인 상황이라 쉽사리 표현 드리기 어렵다”, 는 등의 멘트로 시청자를 유인했다. <연합뉴스TV>도 같은 종류의 영상을 생중계했다. 심지어 노 의원의 생전 영상과 구급차 ‘추격 영상’ 화면을 분리해 나란히 보여주기도 했다. 신문들도 노 의원의 사망 현장과 방법을 상세히 전하거나 사망 동기, 의미 등을 추측하는 기사를 남발했다. 모든 언론들이 예외 없이 ‘투신’이 포함된 제목의 뉴스를 내보냈고, 일부 신문은 “노회찬 시신 발견 경비원, 쿵 하는 소리에’라는 제목을 달고 자살 방법과 장소를 자세히 보도했다. 자살 동기를 추측하는 기사들도 쏟아졌다. 심지어 늘어선 조문객들의 영상을 내보내며, 유명인들의 조문을 부각시키는 장면은 마치 자살을 미화시키려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한국기자협회는 지난달 31일 기존의 보도 기준을 보완해 ‘자살 보도 권고 기준 3.0’을 발표했다. 이 기준에는 ▲기사 제목은 ‘자살’을 ‘사망’, ‘숨지다’ 등으로 표현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 표현 금지 ▲사진·동영상 사용 시 모방 자살 유의 ▲자살 미화, 합리화 금지, 부정적인 결과와 자살 예방 정보 제공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 사생활 존중 등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언론은 이 기준의 준수는 물론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예방에 비중을 둔 자살 보도를 해야 한다. 예컨대 자살 요인인 우울증을 보도할 시는 심각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치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학습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도록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언론뿐만 아니라 범국민적으로 자살 예방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정부 정책도 마련돼야 한다.

글 전병열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