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가야 문화권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

[전병열 칼럼] ‘가야 문화권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

공유

“국회는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발목만 잡을 것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임을 유념하고 조속히 처리해주길 고대한다.”

가야 시대는 신비를 간직한 채 우리 민족 역사에서 잊어진 왕국이었지만, 그동안 드러난 문화유적들을 통해 삼국 시대 못지않은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고 있었다는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신라·백제 역사 복원에 묻혀 금관가야와 대가야 일부가 연구·복원되고 있을 뿐 가야 시대 전모를 현창(顯彰)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 및 복원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가야사 연구 복원은 영호남 공동사업으로 할 수 있어 영호남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고 강조하고 가야사 연구·복원을 ‘국정과제화’하도록 특별히 주문했다. 그 후로 가야 문화사 발굴을 놓고 관련 지자체와 정치권, 학계가 경쟁적으로 발 벗고 나섰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해당 정치권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기도 했다.

사실 영남권은 6가야의 발상지로서, 김해는 3, 4세기에 가장 큰 세력이었던 금관가야의 수도가 있었던 곳이며, 고령의 대가야와 함안 아라가야와 함께 그 역사적 실체가 밝혀져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된 지역이다. 이외 창녕의 비화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고성의 소가야가 영남지역에서 번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야 문화권과 관련성이 있는 17개 지자체는 ‘가야 문화권 지역 발전 시장·군수 협의회’를 만들었다. 이들 지자체는 ‘가야 문화권 행정협의회’를 구성하고 시장·군수 협의회와 더불어 ‘가야 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요청했다.

해당 법안은 민홍철(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완영(자유한국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가야 문화권 연구조사 및 정비와 지역 발전에 관한 특별 법안’과 ‘가야 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특별 법안’으로, 두 법안은 지난해 11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지난 3월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 심사 도중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보류 중이다. 국토위 정종섭(자유한국당) 의원은 “특정 대통령이 자기가 관심 있는 역사에 사업을 지시하면 나머지 지역이나 역사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며 “또 다른 대통령이어도 마찬가지다. 경상도 대통령 나오면 신라사 연구하고 호남 대통령 나오면 백제사 연구하고 이런 식이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민 의원은 “대통령 지시로 법안이 나온 게 아니라 19대 국회 때부터 법안이 제출돼 있었다”며 “신라 문화권은 수십 년에 걸쳐 수조 원을 투입해 아주 활발하게 연구해왔고 백제 문화권도 마찬가지로 이런 면에서 보면 가야 문화권은 오히려 차별받고 소외돼 있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이외도 “문화재 훼손”, “문화재 보존 강화”, “소관 부처” 문제 등 다양한 정치적 논리로 관련 지자체의 숙원인 가야사 복원 관련 특별법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국내 가야 유적은 경남북과 전남북, 부산 등지에 현재 665곳이 있으며, 경남에 82%(544곳)가 위치하고 있다. 2021년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문화관광 산업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며 희망에 부푼 해당 지자체들은 결국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고대 역사 유적의 발굴·복원은 주민들에게 지역 개발은 물론 성장 동력으로 각광받는다. 국가 정책 사업으로 결정되면 막대한 예산을 지원받아 발굴복원공사가 이뤄지고 그에 따른 일자리 창출과 기대 수익은 엄청날 수 있다. 특히 역사 문화는 관광 자원으로 지역 발전의 견인차가 될 수도 있다.

경남도는 지난해 연말 발표한 ‘가야사 조사연구·정비 복원 종합 계획’에서 향후 20년 동안 1조 726억 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국·도비와 시·군비로 예산을 세우고 5대 전략, 18개 정책과제, 108개 사업을 추진한다며 로드맵을 제시했다. 함안 말이산고분군 등 고분군의 복원과 정비, 노출전시관 건립, 세계문화유산 등재 지원과 김해 가야의 땅 조성, 함안아라가야파크와 합천 역사테마파크 조성 등 관광 콘텐츠도 개발한다.

가야사 연구·복원은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로 채택된 만큼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문제는 가야 문화권 특별법 제정이다. 정부는 국회 통과를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고 국회는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발목만 잡을 것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임을 유념하고 조속히 처리해주길 고대한다.

글 전병열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