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수익도 유명세도 싫다… ‘안티투어리즘’ 확산

수익도 유명세도 싫다… ‘안티투어리즘’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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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안티투어리즘(Antitourism)’이 확산되고 있다. 찾아오는 관광객을 기피하는 안티 투어리즘은 관광객이 지나치게 몰려들어 주민들의 삶이 침해당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럽의 안티투어리즘은 지난해 여름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스페인의 유명 관광지 주민들이 벌인 대규모 반(反)관광시위로 수면 위에 드러났다. 이후 관광명소로 알려진 주변 유럽국들도 반관광시위를 벌이며 무분별한 관광 확대를 반대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제주도에서도 한차례 앓고 간 바 있다.

해당 관광지에 사는 주민들은 관광객이 도시를 점령하다시피 하는 ‘오버투어리즘’으로 실제 생활하는 주민의 삶이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그 영향으로 바르셀로나는 호텔 신축을 전면 금지하고 주민의 편에 서기로 했다. 하지만 도시의 주요 수익이 되는 관광을 무작정 통제하는 지자체는 드물다. 때문에 유럽은 여전히 관광객을 기피하는 안티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모습이 유럽에만 국한된 현상일까? 유럽의 사태를 지켜보며, 우리나라에서도 조짐을 보이는 안티투어리즘을 살펴봤다.

여행 강국들이 뿔난 이유

지난 상반기 미국 CNN 방송은 ‘2018 피해야 할 관광지 12곳’을 찾아 보도했다. 경로가 불편하고 위험한 관광지가 주로 선정될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의 이유로 유럽의 여행 강국들이 포함됐다. 관광객이 너무 많이 찾아와 주민의 삶이 혼란스럽다는 이유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베니스와 친퀘테레,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그리스 산토리니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관광객이 도시를 점령하고 주민들의 삶을 침범한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의 결과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2016년 한 해 동안에만 3,400만 명이 찾아온 관광도시다. 관광객들로 인한 소음, 질서혼란, 주택임대료 폭등 등이 반감을 일으켜 지난해 8월에는 관광객을 거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비슷한 이유로 이탈리아에서도 관광객 반대시위를 벌였다.

특히 이탈리아는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상태다. 지난 8월 21일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로마 경찰은 최근 국보급 유적인 ‘조국의 제단’ 분수에 들어가 추태를 부린 남성 관광객들을 공개 수배했다. 조국의 제단은 통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사보이 왕가의 왕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에 헌정하기 위해 건설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영국인 관광객들은 10분가량 분수에 옷을 벗고 들어가 물장구를 치고 음료수를 마시는가 하면 걸치고 있던 속옷을 내려 성기까지 노출하는 행동을 일삼았다.

이 일에 앞서 로마의 명물인 트레비 분수에서 사진 찍기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여성 관광객 간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사진촬영 장소를 두고 가족 단위로 집단싸움을 벌이는 사태도 있었다. 로마의 유명 유적인 콜로세움 벽에 자신의 이름 첫 글자를 새겨 넣은 40대 러시아 관광객은 벌금을 물기도 했다.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는 속옷만 입은 채 운하로 뛰어들거나 아예 목욕을 하고 소변을 보는 관광객도 있다. 이 때문에 베니스 주요 관광지에는 공중도덕 지킴이까지 투입됐다. 하지만 도를 넘은 관광객을 향한 혐오로 인해 이탈리아 내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묻지마 폭행, 성범죄 등이 연일 발생하고 있다.

오버투어리즘에 대처하는 유럽의 자세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는 도시 중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호텔 신축 허가를 전면 중단했다. 호텔을 이용해 관광객의 수요를 조절하려는 의도다. 또한 유명 관광지가 되면서 원주민이 밀려나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공유숙박 플랫폼인 에어비앤비를 강력히 제재하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공유숙박이 1년에 90일 이상 방을 빌려주지 못한다. 이를 어기고 불법 광고할 경우 3만 유로의 높은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불법 에어비앤비에는 60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한다. 또한 하루 30만 명이 찾는 유럽 최대 재래시장인 보케리아 시장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간대에 단체관광객의 입장을 제한했다.

시에서 관광객 유입 수를 직접 조절하는 경우도 있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그런데 하루 평균 1만 명 이상 다녀가는 바람에 도시의 훼손이 많아졌고, 시당국은 성곽 방문객 수를 하루 4,000명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안티투어리즘이 심각한 이탈리아는 정부가 관광 진흥정책을 유지하고 있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베니스는 극심한 인구감소를 겪고 있는데 일상에 필요한 유치원, 문구점, 채소가게 등이 관광객을 상대하는 가게로 변해 남아있는 주민들의 삶마저 위축됐다. 베니스의 주민들은 해상 시위까지 펼쳤지만 정부는 관광 제한의 움직임이 없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10~20채 집을 한꺼번에 빌려 에어비앤비 사업을 하는 이들이 늘면서 월세가 올라 서민들이 임대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임대할 집이 하나 나오면 100명 이상 줄을 서는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베를린 시민들은 관광객에게 “베를린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저항의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된 안티투어리즘

다소 삭막하게 느껴지는 유럽의 안티투어리즘이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이 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드나드는 관광객으로 인한 소음, 쓰레기 투기, 주차 문제로 북촌의 주민들은 불편을 겪고 있다. 현재 북촌로11길 주민들 다수는 관광객의 소음 때문에 집을 비워둔 채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옥마을 곳곳에는 “조용히 해주세요!”, “이곳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입니다.”, “북촌주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라” 등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에 서울시와 종로구는 북촌한옥마을에 ‘관광 허용 시간제’를 최초로 도입했다. 평일,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외에는 통행을 제한하기로 했으며, 일요일은 ‘골목길 쉬는 날’로 운영하고 있다. 단체 관광객은 가이드가 동행해 현장 안내가 이뤄지도록 하고, 무단 침입이나 쓰레기 투기 금지 같은 관광 에티켓을 준수하도록 했다.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를 집중 단속하고 쓰레기 관리, 화장실 확대 등 조치도 취해졌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관광 허용 시간제는 주민의 불편을 해소하는 데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처럼 유럽에서 드러나고 있는 안티투어리즘의 실체가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고 있다. 이는 주민과 관광객 사이의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기에 충분하다. 강제성 없는 정책으로 갈등을 야기하기보다 유럽의 사례를 참고해 보다 확고한 정책이 필요하다.

안상미 기자 asm@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