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로타리안의 윤리적·도덕적 의무다”
– 세계 일류 금고 메이커 (주)디프로매트 회장
– 로타리와 기업,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야산 장만영 전 총재는 (사)한국로타리총재단 차기의장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이로써 야산 의장은 2025-26 회기에 한국로타리 총재단을 대표하게 된다. 한국로타리 총재단은 450여 명의 각 지구 역대 총재들이 구성원이며, 한국로타리 자문기구로써 로타리의 발전에 일익을 맡고 있다.
“총재를 역임하신 분들은 로타리 발전에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한한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지혜를 모아 현 지구 총재와 국제로타리(RI) 임원들의 활약에 도움이 되도록 응원하고 후원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총재단 차기의장으로서의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3661지구의 자랑이며 영광”이라고 전하자, 그는 “의장이라는 명예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 사심 없이 오로지 로타리의 발전에 헌신하고자 나섰다”며 “역대 총재들이 지닌 능력을 로타리 발전에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3661지구에서 가장 존경받는 자랑스러운 로타리안이라는 말에 “나도 정말 그런 인물이 되고 싶다”며 “아직 할 일이 많고 봉사는 자랑이 아니라 의무”라고 말한다.
지난 2016-17년 RI 연수리더로 샌디에이고 국제협의회 연수를 진행하고 돌아온 그는 2009-10년도 3660지구 총재로 봉사한 후 RI 회장대리로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5280지구대회와 2016년 호주 퀸즐랜드의 9630지구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2014년 1월에는 샌디에이고 국제협의회 SAA로 봉사하고, 2015-16년 연수리더와 2016-17년 GETS 연수리더로 봉사했다. 특히 그는 지난 2018년 가을에 개최한 부산 존 연수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대단히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현재 AKS 회원이며 ‘관명장학의 인’이다.
세계 100여 개국에 금고를 수출하는 (주)디프로매트 회장으로서 부산 중소기업인 대상과 천만 달러 수출의 탑, 석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한 그는 시인이자 수필가로서 35여 년간 로타리 세계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담은 <로타리 산책>을 펴내 후진들의 로타리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또한 칼럼니스트로서 ‘어느 철학 교수의 강의 노트(2006년)’와 ‘평화를 일구는 사람들(2009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야산 총재와의 대담은 지난 15-16회기에 펴낸 단행본 <로타리안의 행복>에 상술돼 있어, 이번 인터뷰에는 주로 성공한 기업가의 인간적인 면모에 포커스를 맞췄다.
총재단의장은 역대 총재들의 잠재력을 발휘토록 해야
자연스레 총재단 의장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의장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고 대외적으로 한국로타리 얼굴 역할을 하는 직책으로, 실질적으로는 역대 총재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분들은 임기가 끝나면 그 능력들이 잠자고 있어요. 이분들의 잠재 능력을 결집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면 로타리의 큰 자산이 될 겁니다. 로타리는 현 총재들이 중심이 되고 이들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RC나 RRFC 등 RI 임원들이죠.”
한국로타리총재단(이하 총재단)은 RI 공식기구는 아니지만 한국로타리의 발전과 화합을 위해서 필요한 단체라고 설명한다. 그동안 총재단 의장의 역할을 정의해 놓은 것은 없지만, 야산 의장은 이번 기회에 의장의 역할을 제대로 정의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총재단은 한국의 19개 지구 총재들과 RI 임원들이 신나게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원해 주고, 박수쳐주는 조직”이라고 명확히 정의한다. 선배로서 대우만 받으려 해서는 안 되며, 특히 총재단이 독자적으로 프로젝트, 즉 사업을 벌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총재단이 동기부여를 할 수 있어야 하며, 현 총재의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야산 의장은 행정 구역 단위로 지구를 편성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예컨대 전남의 구례와 경남의 하동을 한 지구로 편성했다면 영호남 화합의 상징이 될 수도 있으며, 로타리가 지역 갈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로타리도 소수 정예화가 필요하다
회원 감소와 이에 따른 재단 기부 부진 등 ‘로타리의 위기’라는 설이 있다고 하자 야산 의장은 “동의할 수 없다”며 강하게 부정한다. “인구 소멸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인구 감소의 부작용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어요. 우선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학생들이 줄어들고, 산업체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해야 하며 종교계에서도 신자나 신도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로타리만의 문제가 아니란 거죠. 이제 AI 시대로 사람의 ‘퀄리티’(질)를 끌어 올려야 합니다. 우리 로타리도 회원증강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소수 정예화로 회원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는 회원 10명 미만 클럽이 많아요. 가족끼리 하는 클럽도 있어요. 다만, 회원 수는 줄어들어도 재단 기부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질병 퇴치와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우리 국제로타리재단은 영원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 3661지구는 20명 미만이면 클럽 유지가 힘들다고 한다고 전하자, 그는 “컴퓨터가 생활화된 시대에 회장 · 총무가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미국 같은 경우는 사무장이 없는 클럽이나 e-클럽도 많다”고 한다. 기존 시스템을 고집하며 안 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힘들수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형 클럽만 선호할 것이 아니라 친교를 위해 소통이 가능한 회원 수가 적정하다고 강조한다.
야산 의장은 최근 낙동클럽 골프동호회 회장을 3번째 맡았다. 그는 친목 도모를 위한 모임이지만, 로타리안으로서 봉사 마인드를 제안했다. 그런 마인드가 없다면 여느 골프 모임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서 경기 중 시상금을 걸고 그 상금을 봉사금으로 기부토록 한 것이다. 부담스럽지 않게 애초 200만 원이 목표였는데 600만 원을 모을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회장 이 · 취임식 때 봉사금으로 내놓자 일반 회원들의 시각이 우호적으로 변하면서 골프동호회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됐다. 그는 친교의 목적은 봉사라면서 ‘자전거 바퀴론’을 다시 꺼낸다. 뒷바퀴가 친교이고 앞바퀴가 봉사라며 뒷바퀴가 힘차게 굴러가면 앞바퀴는 저절로 굴러간다는 그의 이론이다. 야산 의장은 젊은 세대가 목적을 가지고 입회하면 적극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덧붙여 로타리의 장점이 다양성과 공정성, 포용성임을 주장하며 그의 강의 주제인 ‘샌드위치론’과 ‘회전교차로론’ ‘3E론’*을 펼친다. 다양한 세대가 모여 같은 목적으로 친목을 도모하고 공정하게 포용하는 조직은 로타리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행본 <로타리안의 행복> 참조
그는 로타리 지식에 관해서만큼은 최고의 권위자라고 자부한다. 로타리 입회 26년 만에 총재를 맡은 그는 “총재는 로타리 지식과 경험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총재는 사심을 가지고 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3660지구 회관 건립위원장을 맡아 기금 3000만 원을 냈는데 재단에 기록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에게 로타리는 견문을 넓히고 글로벌 인맥과 여행의 즐거움을 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며 예를 들어 설명한다.(지면 관계로 내용 생략) 또한, 로타리 회원들이 디프로매트의 잠재 고객이라고 생각하며, 늘 감사하는 마음이란다.
외교관의 꿈을 로타리와 기업에서 이루다
“1977년 GSE 단원으로 미국 미시간주에 갔는데 당시는 한국에 3개 지구(영호남권, 충청권, 수도권) 밖에 없었어요. 우리 376지구에서 5명을 선발해 갔었어요.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강 사이에 터널이 있는데 캐나다 근로자들이 미국에서 일하고 캐나다로 퇴근하는 것을 보고 정말 신기하게 생각했어요. 우리나라는 남북이 갈라진 상태라 여권 발급조차 힘들 때였어요. 미국에 3주, 캐나다에 일주일을 있었어요.”
그는 국가 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미국에서 자동차 공업을, 캐나다에서 농업을 체험할 수 있었다. 30대 중반의 청년 시절에 겪은 체험이 그의 인생 항로에 많은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그 후 그는 3660지구 제1기 GSE 팀 리더로 미국 오리건주를 다녀왔다.
야산 의장의 어릴 적 꿈은 외교관(diplomat)이었다. 그는 금고 제조업체를 설립하면서 상호를 디프로매트로 정했다. 기업을 통해 민간 외교관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창업 당시 전량 수출하면서 자랑스럽게 ‘메이드 인 코리아’ 라벨을 붙였다. 비즈니스를 통해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국위를 선양한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로타리 총재를 맡았다고 한다. 총재로서도 외교관 역할을 많이 수행했다고 자부심을 드러낸다. 실제 총재 재임 시 아동복지시설인 ‘소년의 집’에 3660지구 여러 클럽의 후원으로 관현악단을 구성해 미국 카네기홀에 공연을 가게 됐는데, 당시 공연을 주관한 수녀께서 관객 동원이 난제라며 그에게 부탁했다. 그는 미국 로타리안을 동원키로 예정하고 뉴욕과 뉴저지주의 로타리 총재 인적 사항을 파악해 협조 안내 편지를 보냈다. 하필이면 그날 폭설이 내려 교통이 마비될 정도여서 태산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공연이 시작되자 입추의 여지없이 관객이 꽉 찬 것이다. 민간 외교로서 로타리가 기적을 만들어 준 것이다.
세계적인 일류 금고 제작업체 (주)디프로매트

1982년 창립한 주식회사 디프로매트는 믿음을 토대로 ‘창의, 자율, 봉사’의 기치 아래 세계 일류 금고 메이커로서 발전해 왔다. 금고 제작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디프로매트는 내화테스트를 통해 금고의 여닫힘, 충격, 내부 온도, 습도 등과 관련된 정보를 사용자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safe4.0 IoT 앱을 개발했다. 1984년 국내 금고업계에서 최초로 KS마크(내화품질인증)를 획득했으며, 스웨덴(SP), 미국(UL), 유럽(E·CBS) 등 세계적인 인증기관에서도 품질인증을 받았다. 디프로매트는 외교관이라는 자가 브랜드로 90% 이상 전 세계 시장으로 수출하고 있는 수출주도형 기업이며,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제품으로 많은 가정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6년여 동안 교편생활을 하다 생뚱맞게 (주)디프로매트를 창업하게 된 동기가 궁금했다.
“ROTC로 임관했는데 통역 병과를 받았어요. 전국에서 영어를 전공한 병사들이 다 모여들었는데 120명 선발됐어요. 영천 부관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부산에서 병기 통역을 맡았는데 주로 번역을 했어요. 영어로 된 병기 관련 교재를 받아서 한국어로 번역해 책자를 만들어 보급하는 거죠. 군 생활을 영어 공부만 하다 제대했는데 당시 우리 부대와 부산 남성여고가 자매를 맺고 있었어요. 그 인연으로 제대 후 남성여고에 재직하게 됐고, 교사 월급으로는 저축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로 경남학원에서 영어 강의를 했어요.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보다 내가 돈을 더 많이 벌었어요. ㅎㅎ”
하지만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의 꿈을 펼칠 곳을 찾고 있었다. 학교에서 내려다본 부두에는 컨테이너를 실은 배들이 왕래하고 우리나라도 산업을 추진하던 때라 영어를 전공한 그가 무역업 쪽에 할 일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 외교관이 아니면 신문 기자라도 하면서 해외 특파원이라도 나가고 싶었지만, 그 꿈을 실현할 여건이 못돼 포기했었다. 기업을 하면 수출 등으로 해외를 다니면서 외교관의 꿈을 펼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교장 선생님의 간곡한 만류에도 그는 과감하게 사표를 내게 된다. 당시 교편을 잡고 있는 아내도 그의 꿈을 응원했단다.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1년은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금고 산업은 가내공업 수준이었다. 마침 미국 친구의 제안도 있던 차에 이 분야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경험도 기술도 없는 처지에서 기초 조사부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어요. 아무런 경험도 없이 프레스 등 중고 기계도 구입하고 금고 제작업체에 가서 견학도 하면서 경험을 쌓은 거죠. 지금 우리 회사 기술연구소는 이공학 박사가 이끌고 있는데 당시는 상상도 못 했어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면서 해 냈어요. 스웨덴에 수출을 많이 하는데 디프로매트 브랜드를 스웨덴 친구와 결정했어요. 당시 스웨덴 인구가 800여만 명이었는데 200만 가구로 보고 100만 개를 팔 계획을 세웠죠. 지금까지 스웨덴에 1200 컨테이너 정도 수출했으니까 성공한 거죠.”
그 당시는 100% 수출을 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잘 몰랐지만, 제1호로 KS 마크를 획득하고 언론에 보도가 되면서 업계에서 깜짝 놀랐단다. 그는 “우리나라 금고 산업에 잠을 깨운 게 디프로매트”라고 자신 있게 소개한다.
나에게 멘토는 없었다. 조금 늦더라도 돌아서 간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멘토가 있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토로한다. ROTC로 군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게 됐다며 아직도 군인정신이 저변에 깔려 있다고 한다. 군 생활이 허송세월이 아니라 그에게는 소중한 기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조금 늦더라도 돌아서 간다”는 인생관을 갖고 있다. 지름길이 있지만, 돌아서 가면서 더 많은 것을 보게 됐고 얻는 것도 많았다는 것이다.
야산 의장은 아산 장(蔣) 씨로 경북 경산군(현. 대구 수성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군생활을 계기로 부산에 정학했다. 그는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구서동에서 부인(김정숙 화가)과 다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웃에 살고 있는 그의 아들(48세)은 명문 대학과 MBA(미국)과정을 졸업하고 대우증권 팀장으로 재직하다 디프로매트 사장으로 가업 승계했다. 어떤 인물로 기억되고 싶은지 묻자 그는 “인생은 일장춘몽이다”는 말로 대신한다. 그는 매일 아침 회사 정원과 화단을 손수 가꾸면서 건강을 지키고 있다.
인터뷰 전병열 기자 chairman@news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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