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기자수첩 l 지방선거 ‘출마 러시’, 풀뿌리 민주주의의 희망인가 권력의 징검다리인가

기자수첩 l 지방선거 ‘출마 러시’, 풀뿌리 민주주의의 희망인가 권력의 징검다리인가

공유

출근길 버스 정류장마다 붉은색과 청색 셔츠나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명함을 돌린다. 그러나 대부분은 받은 명함을 읽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린다. 며칠 전에는 사위와 아들이 지방선거 기초의원에 출마했다는 소개를 받았다. 건네받은 명함 속 인물은 지역에서 자영업을 하는 청년이었고, 한국 정치의 미래를 보는 듯해 격려를 건넸다.

전병열 기자

문자와 카톡 홍보가 폭주하고, 지인들의 전화가 이어지며 선거 사무소 개소식 초대장이 화면을 도배한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문자 공해와 홍보의 물결, 그리고 출마자들의 행렬. 지방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풍경, 바로 ‘출마 러시’다. 중앙 정치권 인사부터 전직 고위 관료, 지역사회에서 이름을 알린 인사들까지 너도나도 출마 선언을 쏟아낸다. 정치적 희망이 살아있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지방자치가 직면한 서글픈 자화상이 드러난다.

가장 큰 문제는 지방선거가 중앙 정치로 진입하거나, 혹은 중앙에서 밀려난 이들의 ‘재기 발판’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중앙당의 공천권에 매달리는 후보들에게 지역 현안은 뒷전이다. 이들에게 지방자치는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목적이 아니라 국회나 중앙 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일 뿐이다. 지역의 정체성과 특수성에 대한 고민 없이 ‘중앙 인맥’과 ‘정치적 후광’만을 내세우는 모습은 지방자치의 본질을 훼손한다.

출마자가 급증하며 경쟁은 치열해졌지만, 정작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희미하다. 급조된 공약들은 대동소이하며, 실현 가능성보다는 눈길을 끌기 위한 토건 사업이나 현금성 복지에 치우쳐 있다. 정책 대결보다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의 공천을 받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오로지 당선을 위해 지역구를 옮기거나 소속 정당을 바꾸는 행태가 ‘러시’라는 이름 뒤에 숨어 정당화된다.

우후죽순 쏟아지는 후보자들은 유권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로감을 준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깜깜이 선거’ 속에서 후보자 수만 늘어나는 것은 결국 정치적 냉소주의를 부추긴다. “누가 나와도 똑같다”는 인식은 투표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지지 기반이 약한 ‘진짜’ 지역 일꾼들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지방자치의 본질은 ‘주권자가 사는 곳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에 있다. 지금의 출마 열풍이 진정으로 지역 소멸을 걱정하고 주민의 고통을 분담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지방선거는 정치 낭인들의 구직 시장이 아니다.

단순히 출마자가 많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이력을 가진 ‘스타 정치인’의 하향 지원이 아니라, 지역의 골목길과 시장 바닥에서 주민과 함께 호흡해온 ‘준비된 행정가’와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다.

이번 지방선거가 권력의 징검다리를 놓으려는 이들의 레이스가 될지, 아니면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회복이 될지는 결국 유권자의 매서운 시선에 달려 있다. ‘출마 러시’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은 권력욕을 가려내는 안목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유권자의 이성적이고 현명한 선택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화려한 수사(修辭)나 미사여구(美辭麗句)에 결코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