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국내 온천에 필요한 혁신과 변화의 바람

국내 온천에 필요한 혁신과 변화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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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화(44세, 가명) 씨는 날씨가 쌀쌀해지면 온천 여행을 떠올리지만, 만족스러웠던 온천 여행은 이미 2년 전 일이다. 국내에도 온천은 있지만, 한일관계가 악화되기 전 일본 규슈 유후인이나 벳부 등으로 떠났던 여행만큼 좋지 않았다. 애초에 ‘해외’라는 상황이 주는 특별함을 제외하더라도 국내 온천 여행에서는 프라이빗하고 마음 놓고 힐링한다는 느낌이 덜하다는 것이다. 이씨는 “국내 온천여행지에서도 가족끼리 단란하게 자연과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일본정부관광국 비짓재팬코리아 PR사무국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일본 여행 목적을 묻는 질문에 ‘온천’이라고 답한 사람들의 수가 세 번째로 많았다. 특히 일본을 다시 방문한다면 무엇을 체험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는 ‘겨울 온천(54.5%)’이라는 응답이 1위로 꼽힌 데 이어, ‘럭셔리 온천 숙박여행(39.5%)’, ‘주말 온천과 미식 여행(39%)’등과 같은 온천 관련 응답이 상위권에 올랐다.

이처럼 가까운 일본을 찾는 여행 목적이 ‘온천’으로 꼽힐 정도로 관심도가 높지만 정작 국내 온천지의 현황은 참담할 정도다.

행정안전부의 ‘2019 전국 온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온천은 366개이나 66개가 5년 이상 미개발로 방치되어 있는 상태다. 특히 개발 허가는 났지만 20년 이상 개발되지 않아 폐허가 되어 있는 곳은 29곳에 달한다.

전체 온천이용업소는 2008년부터 완만하게 증가해 10년 뒤 2018년에는 598개소로 증가했지만, 온천이용자 수는 전년도 대비 0.9% 감소하여 관광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온천 시설 및 콘텐츠 보강이 절실한 상태다.

38년 역사를 자랑해 온 국내 최초 놀이휴양시설인 ‘부곡하와이’는 2017년 문을 닫은 뒤 유령 관광 특구가 됐다. 대형 주차장은 풀이 무성하게 자랐고 인근 상권도 개점휴업 상태다. 1980년대 수안보 온천관광의 상징이던 와이키키 호텔은 2002년 부도 이후로 18년째 방치된 상태다. 2015년 이랜드가 기존 호텔 건물 리뉴얼과 증축을 통해 워터파크형 온천 리조트와 단독빌라형 리조트를 지을 계획이었지만, 2년뒤 사업을 전면 포기 선언을 하면서 4만4천여㎡에 달하는 대규모 시설은 주민과 관광객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흉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행정안전부가 나섰다. 행안부는 지난 8월 ‘온천 관광산업 활성화 계획’을 통해 온천 신고 수리 후 장기간(20년) 방치된 미개발 온천에 대해서 신고 수리를 취소하고 온천지구에서 해제하며,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온천은 조기 개발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조기 개발을 추진할 온천은 기존 목욕용도 중심에서 탈피해 프랑스와 독일과 같은 온천수 화장품 출시, 온천 치료 프로그램 운영 등 온천의 산업적 활용이 활성화되도록 지원한다.

문화체육관광부도 ‘2020년도 온천지구 관광거점 조성’ 사업 공모를 통해 대전 유성온천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 오는 2023년까지 4년 동안 국비 90억원을 들여 온천 관광 콘텐츠 및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 일본의 ‘유후인’, 헝가리 ‘세체니’ 등에 버금가는 글로벌 온천 관광지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충주시도 ‘온천관광 1번지 수안보’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국비 150억 원을 포함 총 302억 원을 투입해 ‘수안보면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오는 2024년까지 5년간 추진한다. ‘도시재생으로 다시 태어나는 온천관광 1번지, THE 수안보’라는 명칭으로 진행되는 이번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수안보면 온천리 22만9000여㎡를 웰니스온천, 특화형 온천장으로 조성하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충주시는 온천수를 활용해 △수안보 블랜티움 조성사업 △걷고 싶은 수안보 조성사업 △주민이 참여하고 운영하는 수안보온천 특화공간 조성사업 △공유공간 조성사업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지금은 해외를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 온천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국내 온천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잠잠해진 후, 저가항공사와 가성비로 무장한 해외 온천에 우리나라 온천 산업이 타격을 입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나라 온천이 수질이 나쁘거나 즐길거리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주왕산에 자리한 ‘소노벨 청송’은 솔샘온천 지역에 자리해 청정 자연을 노천탕에서 즐길 수 있다. 담양리조트온천은 메타세콰이어길이나 죽녹원 같은 관광지와 가깝다는 접근성을 자랑하며, 몸속의 독소를 제거하는 효능이 있는 노천탕으로 유명하다.

충주 수안보온천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온천수를 중앙집중 관리 방식으로 충주시가 관리하기 때문에, 신경통·류머티즘·피부병 등에 효과가 좋은 약알칼리성 수질의 보양온천을 자랑한다.

해외의 풀빌라 같은 이국적인 스파존이 인상적인 곤지암리조트의 ‘스파 라 스파’는 개개인의 건강상태에 따라 맞춤형 프로그램을 통해 스파르 즐길 수 있는 웰니스 스파를 만끽할 수 있고, 독일식 온천을 표방하는 테르메덴은 이색적인 분위기 속에서 수영과 온천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최근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SNS에서 가장 핫한 온천은 단연 부산 기장의 ‘워터하우스’다. 워터하우스는 2017년에 문을 연 휴양단지 ‘아난티 코브’에 있는 온천으로, 온천을 즐기면서 푸른 부산의 바다를 만끽할 수 있다. 무엇보다 보양보다 멋과 여유가 우선이라, 인피니티 온천 풀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찾는 20~30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흡사 갤러리에 온 것 같기도, 해외 유명 호텔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인생샷의 성지다.

멋진 시설과 명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천’하면 국내보다 일본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접근도가 너무 낮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포장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본 온천 여행은 “전통 온천 여관에서 머물면서 계절을 담아낸 음식을 먹고, 문화를 체험하고, 노천탕에서 자연을 즐기며, 온천상점가를 쇼핑한다”는 확실한 시나리오가 있다. 관광객들 모두가 이 시나리오대로 여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토리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또한 국내 온천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프라이빗함을 느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가족탕 형태의 온천 방식이 있지만, 이는 객실 욕탕에 온천수가 나온다는 것일 뿐이다. 기존의 온천리조트들이 가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친구 혹은 연인과의 여행에서 온천 여행이 접근성이 낮다는 것도 한 몫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 접촉하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로 접어들고 있다. 일상 속 방역지침을 준수하는데 오는 피로함에 힐링을 찾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개인화되고 다각화 되는 여행 니즈에 대비하기 위해 국내 온천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할 때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