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일본에서 일상으로 자리잡은 K-FOOD

일본에서 일상으로 자리잡은 K-FOOD

공유

“아프게 매운거 아냐?”, “아뇨, 맛있게 매운데요?”

일본 마트에서 나이 많은 점장과 20대 여성 직원이 나눈다. 직원이 진열하고 있던 것은 신라면. 그리고 이내 매운 신라면을 한 입 먹고 “진짜 맛있어요”라고 한국어로 외친다. 어떤 의미의 말인지 해석조차 없다. 퇴근한 직원은 혼자 집에서 게임을 즐기며 신라면을 먹는다. 이것은 신라면 일본 광고다.

일본에 진출한 지 오래된 신라면이지만, 신라면은 보통의 일본인 입맛에는 너무 매워 일본인들이 즐겨찾는 라면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2-3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류라고 별칭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 전반적으로 한국 문화를 즐기는 풍토가 생겨났고, 한국 음식을 즐기는 것은 그야말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음식이나 맛집 투어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에서도 한국 음식은 시즌 내에서 빠지지 않는다. 2년 전 신년 스페셜 특집 방송까지 추가 제작된 일본의 인기 드라마 두 편에서 모두 등장인물이 한식을 먹었다. 불고기나 비빔밥처럼 흔한 메뉴에서 벗어나, 등장인물이 직접 순두부찌개를 만들거나, 곰탕에 깍두기를 넣어 먹는 등 실제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방법을 선보였다. 각기 다른 드라마였으나 한식을 먹은 역할 모두 유행에 민감하고 개성이 강한 20대라는 설정은 같았다.

한국 음식점이나 한국형 술집도 점차 대중화되는 추세다. 도쿄에서 산 지 10년째 된 직장인 김민주씨는 몇 년 사이 한국 음식을 추천해달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소주와 막걸리 등 한국 술과 안주를 파는 술집도 늘었다. 잡채나 불고기는 마트 밑반찬 코너에서 보이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에, 비빔밥 도시락을 보는 것도 흔해졌다. 민주씨는 “예전에는 한국 음식을 해 먹고 싶으면 신오쿠보에 있는 코리안타운 마트까지 갔어야 했는데, 이제는 동네 마트에서도 괜찮은 퀄리티의 김치나 한국 식재료를 만나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으로 수출되는 김치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일본지역본부에 의하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일본으로 수출된 김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늘어난 1만8천여 톤에 달한다. 수출 금액도 27.5% 증가한 6494만 달러다.

이와 같은 현상의 바탕에는 K-pop과 K-드라마, 영화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pop의 대명사이자 지금은 세계적인 그룹이 된 BTS의 새로운 소식은 일본 방송에서도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음반 차트인 오리콘 차트 순위권에도 K-pop은 빠지지 않는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내수 시장이 한국보다 크고, 음반을 구매하는 문화가 조성되어 있어 아이돌이 활동하고 수익을 창출하기가 용이해, 일본 시장을 겨냥하고 활동하는 아이돌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4차 한류 붐을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트와이스는 멤버 중 3명이 일본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진출 장벽을 낮출 수 있었다. 새로 데뷔하고 있는 신인 그룹 중에서도 일본인 멤버가 있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쿄의 코리안타운인 신오쿠보 지역에 있는 K-pop 학원에 다니기 위해 10~20대들이 모이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의 먹거리 문화를 즐기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떡볶이나 호떡, 닭강정 등 한국의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간식들이 거리에 가득해졌다. 바로 옆 도쿄 패션의 메카이자 유행을 주도하던 하라주쿠는 점점 한산해지고, 코리안 타운이 북적거리게 되었다.

K-pop이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항상 도화선 역할을 해오고 있지만, 대중적으로 파급력이 있는 것은 역시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콘텐츠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일본 역시 긴급사태선언을 하며 사람들이 외부 활동을 줄이고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며 OTT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그리고 넷플릭스나 아마존 등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 콘텐츠에 전보다 더 쉽게 노출되게 되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주연인 현빈의 해병대 복역 시절을 담은 불법 사진집까지 나오는 해프닝이 빚어졌고, ‘이태원 클래스’는 패션과 캐릭터 등 모든 부분에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드라마를 리메이크 제작하는 일본 드라마도 종종 나오고 있으며, 이와중에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수상을 받으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한국 영화에 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유튜브에서 활동 중인 크리에이터 사이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추천하거나, 한국 배우를 소개하는 콘텐츠가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으며, 62만 명이 이용하는 일본의 한 레시피 앱에서는 한국 요리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 김밥천국처럼 간편하고 대중적인 규동을 판매하는 체인점인 ‘마츠야’와 ‘스키야’는 올해 신제품 모두 비빔밥 계열이다. 한식은 야채가 많이 들어가 있어 건강하다는 인식이 생겨, 이제는 편의점에서도 한국풍 김밥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10월 일본 내각부에서 발표한 외교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친밀감을 느끼냐는 질문에 대해 전체의 34.9%가 친밀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는 2019년에 비해 약 8.2% 증가한 추세로, 정치적으로 악화된 한일관계가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고무적인 수치다. 특히 20대는 54.5%에 달하는 응답자들이 한국을 친밀하다고 느낀다고 답했으며, 친밀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응답은 20.2%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다.

문화의 힘은 칼보다 강하다. 코로나로 인해 물리적으로는 단절되어도, 콘텐츠로 연결되는 것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집단은 공공의 적이 있을 때 응집력이 강해지고, 우리에게 당연한 상식은 타인에게 새로운 시도일 수 있다. 혐한과 역사 왜곡, 좀처럼 풀리지 않는 갈등을 풀 열쇠는 문화적인 연결이며, 문화야말로 굴뚝 없는 공장, 새로운 경제의 원동력이다. K-pop과 K-드라마, 그리고 먹거리까지.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한국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콘텐츠를 건강히 생산하고, 건강히 즐겨야 할 때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