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공주 왕릉 2호분 주인, 삼근왕으로 추정

공주 왕릉 2호분 주인, 삼근왕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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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웅진기, 이미 정치·외교 안정기” 발굴조사로 입증

공주/ 이명이 기자 lmy@newsone.co.kr

공주 왕릉원 2호분(왼쪽)과 무령왕릉(오른쪽) 왕비의 장식 귀걸이 비교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사적) 내 2호분의 주인공이 백제 제23대 삼근왕(재위 477~479)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성과가 나왔다. 삼근왕은 개로왕의 손자로, 10대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단명한 인물로 기록된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소장 황인호)는 2023년 9월부터 진행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1~4호분 재조사 결과를 6월 17일 언론에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2호분에서는 정교한 금 귀걸이와 함께 10대 중후반의 것으로 분석된 어금니 2점이 출토됐다. 백제 왕계 중 웅진 초기에 왕위에 오른 유일한 10대 군주는 삼근왕으로, 연구소는 이를 근거로 2호분의 주인을 삼근왕으로 추정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백제 웅진기 초기부터 이미 정치적 체계가 견고했으며, 대외 교역도 활발히 이뤄졌다는 점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됐다.

조사 대상인 1~4호분은 무령왕릉 묘역과는 구분되어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도굴 이후 96년 만에 재조사된 사례다. 연구소는 무덤이 사전 계획에 따라 순차적으로 조성됐고, 내부 구조가 모두 석회로 마감되고 자갈로 바닥을 채운 공통된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2호분에서는 황색과 녹색 유리옥 등 1,000여 점이 출토되었는데, 납 성분 분석 결과 무령왕릉과 동일하게 태국산으로 판명되면서, 당시 백제가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국제 교역망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2호분의 금 귀걸이는 한성기와 무령왕릉 시기의 중간 단계로 평가되며, 금 도금 은반지와 철제 은장식 칼 등도 함께 출토되어 웅진기에도 백제의 금세공기술과 권력 기반이 높았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그동안 정치적으로 혼란기라 여겨졌던 웅진기 전반부터도 백제는 안정된 국가 운영과 국제적 관계를 유지해왔음을 이번 발굴로 입증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조사 성과는 6월 18일과 19일 오전 11시 발굴 현장에서 일반에 공개되며, 설명회는 현장 방문객 누구나 참관할 수 있다(우천 시 취소). 또한 간담회는 국가유산청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되며, 1971년 무령왕릉 발굴 당시 현장을 녹음한 역사적 음성도 일부 최초 공개될 예정이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앞으로도 백제 왕릉에 대한 체계적 조사와 연구를 지속하고, 국민과의 소통과 공유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