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이어온 역사와 풍수적 가치, 전통 조경까지 품은 문화경관
이명이 기자 lmy@newsone.co.kr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에 자리한 「보성 봉강리 영광정씨 고택」이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됐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예고를 통해 고택의 역사적·풍수경관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30일간의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지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 고택은 영광정씨 정손일(1609~?)이 봉강리에 처음 터를 잡은 이래 400여 년 동안 대를 이어 내려온 공간으로,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과 근대기의 민족운동, 해방 이후의 이데올로기 사건 등 굵직한 시대의 흐름을 담고 있다.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의 장면들을 고스란히 간직해온 셈이다.
특히 집터는 풍수지리의 시조 도선국사가 언급한 ‘영구하해(靈龜下海,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바다로 내려오는 형국)’ 가운데 거북의 머리에 해당하는 길지로 전해진다. 이러한 입지적 특징 때문에 고택은 ‘거북정’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건축적 구성 또한 호남 지역 민가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안채와 사랑채는 마당을 사이에 두고 2자형으로 배치됐으며, 안채는 오자형으로 꾸며 뒤쪽에 사적 공간과 수납 공간을 두는 등 보성 지역 민가의 특징을 반영했다. 이는 당시의 생활상과 사회적 질서를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고택 주변의 문화 경관도 주목할 만하다. 서측 계곡 건너 자리한 삼의당(三宜堂)은 일제강점기 서당과 제실, 외부 접객 기능을 담당하며 교육과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또한 고택 진입부에는 1880년 호남 유림들이 조정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세운 광주이씨효열문이 서 있어 문중의 효와 절개를 기리는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삼의당 일원에서 전개된 원림 경영 방식, 사랑채 안마당에 조성된 정원, 그리고 고택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해안 득량만의 풍광은 전통조경 기법과 근대적 변용이 어우러진 독창적인 경관미를 보여준다. 고택과 주변 환경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문화경관으로서의 가치를 갖춘 것이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보성 봉강리 영광정씨 고택은 건축, 풍수, 민속, 역사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가치를 지닌다”며 “최종 지정 이후에는 지자체와 협력해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역사문화관광 자원으로 적극 활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