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화제의 인물 |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걸어왔는데, 이제 내 인생을 찾고...

화제의 인물 |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걸어왔는데, 이제 내 인생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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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수 전문식당 ‘시랑대’ 대표  “강요로 하는 봉사는 봉사가 아니다”

전병열 기자 chairman@newsone.co.kr

학동 박동수 11지역 대표와 기장 ‘대게촌’에서 만났다. 그는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본인의 인생 스토리를 가감 없이 털어 놨다. 그의 지난한 인생 여정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였으며, 감동적이었다. 60여분 동안 진행된 대담 내용은 그의 진솔한 고백이었다.

“이제 내 인생을 살고 싶다”고 밝힌 그에게서 그동안의 고달픔이 느껴졌다. 경주시의 외곽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한 푼도 물려받은 것이 없어요. 군 제대 후 가방 하나 들고 단돈 5만원가지고 울산으로 갔어요. 제가 벌어서 결혼도 하고 아들 딸 잘 키워 남부럽지 않게 일가를 일구고 살고 있어요. 이제 내 인생을 찾고 싶어요.”

1964년생인 학동 대표는 그동안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며, 이제 주변을 돌아보고 어려운 이웃에 봉사도 하며 자신의 길을 가고 싶다고 했다. 로타리에 입회한 이유이기도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겠다고 소신을 전했다.

학동 대표는 울산에서 자리를 잡고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했다. 그러나 ‘펌프카’ 사업을 하고 있던 그에게 IMF는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결국 전 재산을 처분하고 보따리 2개를 들고 기장 처갓집을 찾았다. “내가 이 빚을 안고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겠나?”는 절망 속에 방황을 했지만, 자식들 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물불가리지 않고 죽도록 일만 했어요.” 그간의 사정을 토로하는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가족을 위해 헌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그의 정신력은 강했다.

처갓집 아래채에서 월세방으로 옮겨가면서 죽을힘을 다해 살고자 노력했다. 그의 아내는 노점상을 하고 그는 막일을 해가며 버티고 한 푼이라도 저축했다. 7여년이 지나자 ‘노력 끝에 성공’이라는 말이 현실이 됐다. 기장에다 빚을 조금 내서 빌라를 사고 아내도 건물에 입주를 했다. 내 가게를 갖는 게 꿈이었다는 아내의 작은 소망을 이룬 것이다. 그의 성공에는 아내의 역할이 컸다.

“업어주고 싶을 정도로 아내가 고마웠어요. 지금도 제가 하는 일을 무조건 지지하고 밀어주고 있어요. 아내가 없었다면 오늘의 제가 없을 겁니다.”

그도 지인의 소개로 울산 항만노조에 취업을 하게 됐다. 월 700여만 원의 수입으로 적잖은 보수로 그가 기반을 닦는데 큰 힘이 됐다. 아내가 하는 식당도 한곳을 더 늘려 운영했다. 해외 관광객을 위주로 운영하다 보니 일반 식당이 필요했단다. 직원도 10여 명이 됐으며, 나름대로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제 자신을 되돌아보면 정말 자랑스럽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물론 아내의 공이지만,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내가 없다보니 없는 사람 심정도 이해하고, 로타리를 통해 작은 힘이나마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있어요.”

에피소드로 사업이 망하면 부부 갈등이 생긴다는데 돈 때문에 다툰 적이 없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우리 부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며 “아내의 응원이 없었다면 재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아내와는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다. 아이들도 아빠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까 열심히 잘 잘아 갈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는 “연년생인 딸(33세)은 3년 전에 결혼 했는데, 수학을 전공해 학원 강사로, 사위는 개인 사업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으며, 아들은 올해 결혼해 울산 항만노조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는 “사업을 실패할 때는 운이 나빴고, 성공해서 보니까 운이 따라 줬다”는 그는 “운을 쫒은 게 아니라 잘살아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앞만 보고 열심히 산 것이 성공 비결이었다”고 거듭 강조한다. 본인 자랑 좀 해보라고 그는 “ㅎㅎ 잘 생겼잖아요. 지금까지 바르게 정직하게 성실히 살아왔다”며 “크게 내 세울 건 없지만 열심히 살았다는 것만은 자랑스럽다”고 했다.

로타리 생활은 내 인생의 자랑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이제는 나를 위해 살고 싶어서 로타리에 입회를 했고, 아내의 지원 속에 봉사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어 보람이 있습니다.” 지역대표로서 경제적입 부담도 무시하지 못할 텐데, 그만한 보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2020-21회기와 2022-23회기에 회장을 역임한 그는 지역대표로서 어려운 점은 회원증강이라고 한다. 그가 제시한 회원증강 방안은 회원 한명이 한명씩 추천하는 방법이란다. PHF 기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그는 일반 회원에게 부담을 줄 수 없어 임원진의 협조를 받고 있다며 과하게 부담을 주는 건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그가 소속된 새기장 클럽의 경우 1만 달러 목표에서 현재 8천 달러를 달성했다. 클럽 활성화 방안으로 새기장RC의 경우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식사 봉사를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 다른 클럽에도 적용해 보도록 권유하고 있다고 했다. 또 정기 모임 시 10분 스피치를 통해 회원의 직업을 소개하고 상호 상부상조가 될 수 있는 방법도 있어 효과적이라고 소개했다.기다려지는 모임이 돼야 한다는 학동 대표는 “젊은 세대의 영입으로 역동적인 클럽이 돼야 한다”며 “원로 회원들이 양보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럽도 자체 운영 기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그는 “봉사는 자발적으로 해야 보람이 있다”며 “요구로 하는 봉사는 진정한 봉사가 아니다”고 강조한다. 적은 돈으로 큰 봉사를 하는 곳이 로타리인데, 여럿이 모여 하는 봉사가 보람이 더 크다“고 말한다.

“로타리는 봉사단체라서도 좋지만, 다양한 직업을 가지신 분들을 만나 교류하는 것이 앞으로 큰 자산이 되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지역대표로 대우해 줄 때 보람을 느끼기도 했는데, 등불 총재님께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