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해외관광 ㅣ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여정에 우정의 꽃이 피다

해외관광 ㅣ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여정에 우정의 꽃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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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애인 복지 시설 ‘태양의 집’ 방문으로 세계적 시각 가져
벳푸, 유후인, 군쵸 주조장, 유황 재배지, 라라포트, 텐만구, 모모치 해변

전병열 기자 ctnewsone@naver.com

태양의집 방문

지난 10일 오전 7시 30분, 김해공항 국제선 5번 게이트에는 노란 조끼를 입은 장애인들이 열을 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사)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회장 강충걸) 관계자가 참가 인원을 파악하고 있었는데, 보호자들이 함께 모여 있어 중증 장애인을 제외하면 비장애인과 구분하기 어려웠다.
국제로타리 3661지구(총재 황인재) 부산금정로타리클럽(금정RC)의 후원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한·일 장애인 교류 복지시설 ‘태양의 집’ 탐방 행사가 열렸으며, 올해는 일본 장애인 복지 시설 탐방을 목적으로 관광을 겸해 모두 127명이 참가해 2박 3일간 진행됐다.

균초주조장

금정RC에서는 이번 행사 대회장을 맡은 신우 최순웅 전 회장과 도문 김동석 회장을 비롯해 11명이 대표로 참가했다. 10년째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장애인 후원 행사는 금정RC에서 매년 3,000만 원(지구 1,000만 원 포함)을 후원한다.

‘에어부산’ 항공편으로 후쿠오카 국제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우동과 비빔 솥밥 등 현지식으로 식사했다. 장애인을 보살펴야 하는 동반자들은 먼저 그들을 챙기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대형 식당 건물(HAKATA CROSS)에는 식재료 쇼핑센터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우리 일행 외에는 방문객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일행들은 관광객을 위한 식당(千福万來)이라고 알려주었다.

유노하나 유황 재배 시설

오이타현 히타시로 이동하는 도로변은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었다.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들녘과 촌락을 이룬 주택들, 산 중턱에는 뭉게구름이 깔려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졌다. 일본은 경제림으로 편백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고, 군데군데 초원을 이룬 산들이 나타났다. 가이드는 온천 지열로 인해 수목이 자라지 못하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에서 동행한 여행사 가이드는 장애인들의 눈높이에 맞게 위트 있는 설명으로 일본 문화를 소개했다.

히타시 마메다마치(豆田町)에 위치한 군쵸 주조장(薫長酒造)은 에도 시대 후기(1702년) 무렵 설립된 양조장으로, 300년 이상 이어온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일본주(사케)와 소주(焼酎), 발효식품까지 생산하며, 옛 양조 창고들은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 히타의 청정 지하수를 사용해 깔끔하고 청량감 있는 맛으로 평가받으며, 판매원들이 시음을 권해 맛볼 수 있다. 마메다마치 거리는 전통 상점들이 즐비해 있고 에도 시대 건물이 잘 보존돼 있어, 2004년 ‘국가중요전통건축물 보존지구’로 지정되었다.
양조장에서 시음과 쇼핑을 즐기며 유서 깊은 전통 거리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진으로 추억을 남겼다.

온천의 도시 벳푸(別府)로 향했다. 규슈 오이타현에 위치한 벳푸는 일본을 대표하는 온천 관광지로, 온천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산허리를 감싸고 도는 풍경이 아름다워 도시 전체가 증기로 둘러싸인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유노하나 유황 재배지(湯の花小屋)를 방문했다. 이곳은 벳푸시 묘반 온천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온천 문화유산이다. ‘유노하나(湯の花)’는 ‘온천의 꽃’이라는 뜻으로, 전통적으로 채취해온 온천 결정체이다. 짚으로 덮은 오두막집에서 증기를 모아 인공적으로 결정화시켜 얻는데, 이를 ‘유노하나 소야(湯の花小屋)’라고 부른다. 오두막 내부의 대나무, 흙, 짚을 통해 증기가 스며들어 벽면에 흰 결정체가 맺히는데, 이것이 유노하나이다. 유노하나는 미용과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입욕제나 약용 온천제로 쓰인다. 현장에서 직접 체험은 못했지만, 재배 시설을 둘러보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온천수로 삶은 계란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숙소로 향했다.

‘그랜드 머큐어 벳푸 베이 리조트 & 스파’는 오이타현 히지마치 벳푸만 해안가에 위치한 고급 리조트형 호텔로, 온천과 조망,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난생처음 다다미 매트가 깔린 전통 료칸에서 일본의 전통미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됐다. 료칸은 단순한 숙박이 아니라 전통 건축과 다도, 식사, 온천,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문화 체험의 장이다. 2인 1실로 숙소를 배정받아 저녁 식사 전에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고, 노천 온천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쾌적한 휴식을 취했다. 저녁은 뷔페식당에서 일본 해산물 등 지역 특산 요리와 서비스로 제공되는 생맥주를 곁들였다. 식사 후 일행들은 밤늦게까지 스파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태양의집 이사장과 단체 대표단 기념사진

다음 날, 호텔식 뷔페로 아침을 먹고 이번 행사의 목적지인 ‘태양의 집’으로 향했다. ‘태양의 집(太陽の家)’은 1965년 설립된 장애인 지원시설이자 사회복지 법인으로, 오이타현 벳푸시에 위치해 있다. 설립자인 나카무라 유타카(中村裕) 박사는 장애인에게 의료적 지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립을 돕는 서비스도 필요하다며, 장애인이 사회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전후 시기에 ‘장애인 고용과 자립’을 목표로 이 시설을 세웠다. 이곳은 단순한 복지시설을 넘어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존재감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2025년 현재 ‘태양의 집’의 대표(理事長)는 야마시타 타츠오(山下達夫) 이사장이다. 그는 소아마비로 중증 장애를 안고 휠체어를 이용한다. 야마시타 대표는 어렸을 때 ‘훈련생(訓練生)’으로 태양의 집에 들어가 지원과 훈련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 경험 덕분에 설립자의 철학을 체감적으로 이해했고, 태양의 집이 단순한 복지기관이 아닌 ‘기회 제공의 장’이 되도록 이끌어 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태양의 집 연계 기업인 ‘미쓰비시상사 태양 주식회사’에 입사해 프로그래머 등으로 일했고, 대표직을 거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국제로타리 금정RC 대표단 기념 사진 / 다자이후 텐만구

태양의 집은 소니와 도요타 등 일본 대기업과 협력해 ‘장애인 고용 모델 공장’을 운영하는 등 산·학·복지 협력의 선구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직업뿐 아니라 주거, 의료, 여가 등 전반적인 생활 지원 체계를 마련해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1980년대 이후로는 아시아 각국과 교류하며 장애인 복지 모델을 전파하고, ‘한국 태양의 집’ 설립에도 기여했다.
야마시타 대표는 휠체어에 의존한 채 한국 장애인들에게 격려와 환영 인사를 전했고, 참석자들은 큰 감동을 받으며 박수로 화답했다. 이어 강충걸 협의회장이 선물을 전달하고 대표단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장애인들과 방문객들은 박물관과 작업 현장, 쇼핑센터 등을 둘러보며 설립 역사와 자동차, 화장실 등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들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농촌 전경이 펼쳐지는 고속도로를 달려 유후인에 도착했다. 유후인(湯布院)은 규슈 오이타현 유후시에 위치한 온천 마을로, 온천 관광지로 유명하다. 전통적인 온천과 아름다운 자연 환경, 예술과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이다. 유후인을 대표하는 유후다케산은 후지산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으며, 킨린코 호수(金鱗湖)는 마을 중심부에 자리해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호수 주변의 경관은 사진을 담기에 더없이 좋았다. 유후인 거리는 갤러리, 공예품 상점, 카페 등 예술적 요소가 조화를 이룬 마을로, 현대적인 예술과 전통적인 일본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여행사에서 이곳의 명물인 ‘금상 고로케’를 제공해 즐비한 먹거리를 대신할 수 있었다. 기념품 가게에서 마유 등을 고르는 장애인들의 모습에서는 행복과 즐거움이 묻어났다.

전통 우동을 곁들인 현지식으로 식사를 마친 뒤, 황금 들녘이 펼쳐진 길을 지나 후쿠오카의 랜드마크인 라라포트에 도착했다. 라라포트 후쿠오카는 쇼핑, 음식,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대형 복합 상업 공간으로, 2022년 4월에 개장했다. 26,000여 평 부지에 지상 5층과 지하 1층이 상업시설, 지상 7층은 3,000대 규모의 주차장으로 꾸며져 있다. 입구에는 20m 크기의 초대형 ‘건담’이 서 있었는데, 어깨와 머리가 움직이며 포즈를 취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모모치해변 마리존

저녁 식사 후 하루 일정을 마치고 후쿠오카 아일랜드시티에 위치한 3.5성급 호텔 ‘더 358 우미’로 이동했다. 바다와 자연이 어우러진 조용한 환경 속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금정RC 회원들은 전통 꼬치집에 들러 일본 사케로 피로를 풀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호텔식 뷔페를 마치고 다자이후 텐만구로 향했다.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満宮)는 학문과 지혜의 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를 모시는 신사로, 919년 창건된 일본 대표 학문의 성지다. 미치자네는 헤이안 시대 학자이자 정치가였으나 정치적 음모로 다자이후로 좌천돼 903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후 재해와 질병이 잇따르자, 사람들은 그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신사를 세웠고, 지금은 전국 12,000여 개 텐만구 신사의 총본궁이 되었다.
신사 경내에는 6,000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있고, 그중 ‘토비우메(飛梅)’는 미치자네를 그리워해 스스로 뿌리를 뽑고 날아왔다고 전해진다. 심자지(心字池)는 ‘마음(心)’ 자 모양의 연못으로, 세 다리를 건널 때마다 과거·현재·미래를 생각하며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다고 한다. 경내의 황소 동상은 머리를 만지면 지혜와 학업 성취를 기원할 수 있다 해, 우리 일행도 줄을 서서 만져 보았다.
신사로 향하는 거리는 관광객들로 붐볐고, 목재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독특한 스타벅스 매장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다자이후 텐만구

이후 모모치 해변(百道浜)으로 향했다. 후쿠오카시 하카타만 연안 니시구 지역에 조성된 인공 해변으로, 약 1km 길이에 산책과 조깅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해변 옆에는 후쿠오카 타워가 서 있어 전망대에서 시내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었고, 해변 근처 마리존에는 레스토랑과 웨딩홀이 있어 결혼식이 열리기도 한다.

단체 기념사진을 찍은 뒤, 오호리 공원(大濠公園)으로 이동했다. 후쿠오카 성의 방어용 해자에서 유래한 호수를 중심으로 2km가 넘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관광 명소로 사랑받는다. 우리 일행은 손에 손을 잡고 산책로를 걸으며 2박 3일 여정을 되새겼다. 서로의 이해를 넓히고 우정을 돈독히 한 이번 여행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진 진정한 친교의 장이었다. 그렇게 가슴에 깊은 울림을 새기며 귀국을 위해 후쿠오카 공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