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필리버스터, 누굴 위한 무제한 토론인가

[취재수첩] 필리버스터, 누굴 위한 무제한 토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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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파의 합법적 저항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의미 없는 24시간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협상력을 끌어올릴 실질적인 전략과 국민의 가슴을 울릴 명쾌한 논리로 무장해야 한다.

전병열 기자 chairman@newsone.co.kr

전병열 기자

국회 본회의장의 불이 켜지고 야당 의원이 단상에 올라선다. 준비해 온 원고를 읽어 내려가며 정부·여당의 독주를 성토하고 법안의 부당성을 목소리 높여 외친다. 그러나 그 열변을 들어주는 이는 많지 않다. 교대로 자리를 지키는 국회 속기사와 사무처 직원, 의장석의 국회의장, 그리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몇몇 야당 의원들뿐이다. 여당석은 텅 비어 있거나 잠을 청하는 조용한 적막만 흐른다. TV 생중계를 지켜보는 국민 역시 이제는 리모컨을 돌려 버린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반복될 때마다 펼쳐지는 익숙한 풍경이다. 한때 소수파의 합법적 저항 수단이자 ‘의회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렸던 필리버스터가, 이제는 결과를 누구나 알고 있는 무기력한 ‘요식행위’로 전락했다.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국면이었다.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뒤흔들고 국민적 피해와 반발 우려가 거세게 일었던 사안이었음에도, 이를 저지하겠다던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거대 다수당의 무력화 전략 앞에 허망하게 꺾였다.

현행 국회법상 재적의원 5분의 3(180석) 이상이 찬성하면 필리버스터는 시작된 지 24시간 만에 강제로 종료된다. 여기에 임시국회 회기를 하루 이틀 단위로 쪼개는 ‘살라미 전술’까지 동원되자, 야당 의원이 단상에 서기도 전에 회기가 끝나며 토론은 자동 종료되었다. 결국 정해진 결말은 단 하나였다. ’24시간 무기력한 시간 끌기, 그리고 예견된 가결.’ 무기력한 야당은 패배가 예견된 싸움터로 매번 등 떠밀리듯 나아가고, 거대 여당은 24시간이라는 ‘합법의 탈’을 쓴 채 법안을 밀어붙였다.

문제는 대다수 국민의 우려가 쏠린 주요 현안마저 이처럼 ‘뻔한 연극’으로 처리되면서, 국회를 향한 국민의 정치 유기 및 무관심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필리버스터의 핵심 목적은 법안의 문제점을 밤새워 지적함으로써 대국민 여론전을 펼치고 국민의 힘으로 다수당을 압박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검수완박’ 때처럼 결론이 바뀔 리 없다는 학습 효과가 쌓이면서, 국민들은 필리버스터를 정책적 담론의 장이 아닌 ‘정쟁용 시간 끌기 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야당 의원들의 처절한 토론에 진짜 귀를 기울이는 이들은 극소수의 강성 지지층뿐이다.

그렇다면 실효성도, 반전의 계기도 만들지 못하는 필리버스터를 야당은 왜 계속하는 것일까. 야당에게 필리버스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알리바이이자 정치적 명분 쌓기 수단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웠다”는 메시지를 지지층에게 전달하고, 법안 통과의 책임이 전적으로 여당에 있음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계산이다. 즉, 법안 저지라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오직 내부 결집과 명분 확보를 위한 정치적 쇼맨십만 남은 셈이다. 그러나 대중의 무관심 속에 진행되는 무기력한 토론은 야당의 정치적 무능을 반증할 뿐이다. 24시간 동안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체력전만으로는 다수당의 폭주를 막을 수도,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도 없다.

소수파의 합법적 저항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의미 없는 24시간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여당과의 협상력을 끌어올릴 실질적인 전략과 국민의 가슴을 울릴 명쾌한 논리로 무장해야 한다. 결과가 정해진 요식행위에 그치는 필리버스터는 결국 의회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무관심만 가속화시킬 뿐이다. 뻔한 비극의 결말을 바꿀 수 없다면, 야당은 이제 필리버스터라는 오래된 무기를 내려놓고 새로운 판을 짜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