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속에서 켜고 끄는 에어컨 바람은 단순한 냉기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삶의 방식과 가치가 맞부딪히는 소리 없는 대화이다

사람의 체온을 능가하는 섭씨 38도의 폭염이 이어지며 기상청은 일부 지역에 폭염 중대경보를 발령했다. 체감온도가 38도 이상일 때 야외활동을 중단하라는 최상위 단계의 경보다.
주간에는 사무실에 갇혀 있어 더위를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퇴근 후 주차장에서 잠시 걷는 동안에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집에 돌아와 찬물로 샤워하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폭염을 잊는다. 그러나 뉴스 속 연이은 폭염 보도에도 실감하지 못하다가, 농촌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온열 증세로 숨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농촌 출신인 나는 어린 시절 무더위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여름을 즐기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난한 시골의 삼복더위 속에서 가족을 위해 땀으로 목욕하듯 일하고 연신 냉수를 들이켰던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때는 부모님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지난날이 후회로 남지만, 이제 와서 용서를 구할 길은 없다. 온열 환자가 늘어간다는 소식에 부모님 생각이 겹쳐지며 안타까움과 죄스러움이 온몸을 덮친다. 선풍기조차 없이 부채 바람에 의지해야 했던 시절을 단순한 추억으로 넘기기에는 너무도 비참한 삶이었다는 것을, 지금의 안락한 생활과 비교하며 새삼 깨닫는다. 그런 시대를 살다 떠나신 부모님의 인생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해가 지며 시원한 바람이 분다며 아내가 에어컨을 껐다. 선풍기를 켜며 나는 “열대야라는데 에어컨을 왜 꺼요”라며 불만을 토했다. 아내는 “일정 기준 이상 사용하면 전기세 폭탄 맞는다는 뉴스 못 봤어요?”라며 걱정을 내비쳤고, 나는 “우리 형편이 그 정도로 걱정할 상황은 아니잖아”라며 불만을 표했다. 결국 더 버텨봤자 손해라는 생각에 아내의 고집을 따르게 된다.
아내가 살림살이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절약이 몸에 밴 습관 때문임을 알지만, 이제는 삶의 질을 생각할 나이가 되지 않았느냐는 반문을 속으로 삼킨다. 우리 세대는 전기뿐 아니라 수도, 생활비 등 모든 영역에서 절약을 생활화했다. 외식을 나가도 가격을 먼저 따지는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부모님 세대의 근검절약 정신이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시절의 아픔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탓할 생각은 없지만, 삶의 질보다 내일을 대비하려는 세대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다.
열대야에 쫓겨 거실로 나온 나는 창문을 열어 자연풍을 기대했지만, 결국 에어컨을 켜야 했다. 실내 온도가 30도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아내도 따라 나오며 더위를 탓했고, 이번에는 별다른 반대가 없었다. 창문을 닫자 온도가 빠르게 내려갔다. 하지만 아내는 곧바로 에어컨 온도를 28도로 맞췄다. 내심 불만이었지만, 전기세에 대한 아내의 노파심을 이해하며 리모컨을 조절해 열대야 속 잠을 청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폭염 속에서 여전히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은 도심의 쪽방이나 열악한 농가에서 더위와 싸우고 있다. 내가 겪는 작은 갈등과 불편은 그들에게는 사치스러운 고민일지도 모른다. 에어컨을 켜고 끄는 일상의 풍경조차,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꿈 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기상청은 당분간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될 것이라 예보한다. 전기세를 걱정하며 아내와 실랑이를 벌이면서도 결국 기계 바람에 의존해야 하는 시대의 변화다. 자연풍에 의지하던 그 시절이 그립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에어컨 바람으로 더위를 달래며 여름을 견딘다.
그리고 나는 문득 생각한다. 더위와 싸우는 이 작은 일상이야말로 우리 삶의 단면이 아닐까. 절약과 안락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 부모 세대의 고단한 기억과 오늘의 편리함이 교차하는 순간. 열대야 속에서 켜고 끄는 에어컨 바람은 단순한 냉기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삶의 방식과 가치가 맞부딪히는 소리 없는 대화다. 그 대화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부채 바람과 에어컨 바람 사이를 오가며, 더위를 견디고 삶을 이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