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뉴스 세계의 라지파크 l 군용비행장에서 도심의 ‘평시·비상시 이중 공원’으로

세계의 라지파크 l 군용비행장에서 도심의 ‘평시·비상시 이중 공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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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 쇼와기념공원(国営昭和記念公園) : ‘천황 재위 50년 기념사업’에서 ‘수도권 방재의 심장’까지, 43년의 여정

도쿄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35km, 다치카와의 하늘에는 한때 군용기가 오르내렸다. 반환된 옛 비행장 부지는 1983년, 국가가 직접 계획한 국영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다운스뷰 파크가 시장 자본과 민간 거버넌스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실험이었다면, 쇼와기념공원은 국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하고 재해 대응 기능까지 함께 짜 넣은 ‘국가 주도형’ 브라운필드 재생의 대표 사례다. 43년째 진화 중인 이 공원의 기록을, 조경의 눈으로 다시 읽는다.

글 · 최 인 영 ( 조경학 박사/ ㈜어울림조경 대표/ (사)100만평공원 운영위원

최인영 박사

프로젝트 개요

세계의 라지파크 대부분이 버려진 군사·산업 부지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은 지난 호 다운스뷰 파크에서 확인한 바 있다. 도쿄 다치카와의 국영 쇼와기념공원은 이 계보의 또 다른, 그러나 사뭇 다른 결말을 보여주는 사례다. 옛 육군 비행장이자 주일미군 기지였던 땅은 1977년 전면 반환된 뒤, 국가의 직접 계획 아래 공원과 광역방재기지로 함께 정비되었다. 계획면적 180ha, 사업 착수로부터 40년이 넘도록 단계적으로 확장을 거듭해 온 이 공원은, 오늘날 누적 입장객 1억 명을 넘어선 일본 최대급 국영공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공원의 정식 명칭은 국영 쇼와기념공원(国営昭和記念公園, Showa Kinen Park)으로, 일본 도쿄도 다치카와시 미도리초 3173번지를 중심으로 아키시마시에 걸쳐 있으며, 도쿄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35km 떨어진 위도 35도 42분 11초, 경도 139도 24분 38초 지점에 자리한다. 계획면적은 약 180.1ha에 이르고, 2022년 5월 기준 실제로 문을 연 구역만도 약 169.4ha에 달한다. 이 땅은 원래 1921년 개설된 일본육군 다치카와 비행장이었다가 태평양전쟁 패전 후 주일미군이 접수해 다치카와 기지로 썼고, 1977년에 전면 반환되었다. 일본 정부는 1979년 11월 각의결정을 통해 이 반환지를 국영공원과 광역방재기지로 나누어 함께 정비하기로 했으며, 국제설계공모를 거치지 않고 건설성(현 국토교통성) 관동지방건설국이 기본계획을 직할로 수립했다. 오늘날 공원의 조성사업은 국토교통성 관동지방정비국 국영쇼와기념공원사무소가 시행하고, 일상적인 운영은 일반재단법인 공원재단이 지정관리자로서 맡고 있다. 1983년 10월 26일 1기 70ha가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단계적으로 넓어져 왔으며, 2022년 4월 8일에는 개원 약 39년 만에 누적 입장객 1억 명을 돌파했다.

일본 국영 쇼와기념공원 안내지도다치카와 비행장에서 ‘공원과 방재기지’로

다치카와 비행장에서 ‘공원과 방재기지’로

다치카와의 하늘은 일본 항공산업의 요람이었다. 1921년 육군이 비행장을 연 이래, 이 일대는 군용기 생산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태평양전쟁 패전 후에는 미군이 기지를 접수해 확장했고, 1950~60년대에는 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이른바 스나가와 투쟁이 전국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도쿄의 팽창은 결국 기지를 도심 한복판의 ‘섬’으로 만들었고, 1977년 11월 다치카와 비행장은 전면 반환되었다.

일본 정부는 반환지 처리에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다. 1979년 11월 각의(閣議)는 부지를 통째로 공원화하는 대신, 절반은 ‘국영공원’으로 절반은 ‘광역방재기지’로 나누어 함께 정비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따라 1983년 육상자위대 다치카와 주둔지가, 같은 해 10월 국영 쇼와기념공원 1기(70ha)가 나란히 문을 열었다. 오늘날 인접한 다치카와 광역방재기지에는 육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 도쿄소방청의 구조기동부대(하이퍼레스큐), 경시청 항공대, 국립병원기구 재해의료센터, 내각부 재해대책본부 예비시설이 함께 들어서 있다. 공원은 이 기지와 함께, 수도권 대규모 재해 발생 시 광역 피난장소이자 물자 집적 거점으로 지정되어 있다. 공원과 방재기지가 한 몸에서 태어난 셈이다.

옛 다치카와 비행장·기지의 항공사진(1940~1970년대)과 반환 직후의 모습

국가 직할계획과 다섯 개 존 구상

쇼와기념공원의 마스터플랜은 다운스뷰의 〈Tree City〉처럼 국제설계경기를 거치지 않았다.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건설성(현 국토교통성) 관동지방건설국이 직할로 수립했다. 대신 계획가들은 다마천 수계가 만든 완만한 무사시노 대지의 원지형과 비옥한 흑색화산회토를 그대로 살려, 도시에 ‘녹색 문화’를 되돌려준다는 단순한 명제를 세웠다. 도쿄 도심과 서쪽 산지 사이, 철도와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입지 조건 위에 완전히 새로운 지형을 조성하는 대신, 있는 땅의 성질을 존중하는 온건한 접근이었다.

국영 쇼와기념공원의 다섯 개 공간 구성

기본계획은 공원 전체를 성격이 다른 다섯 개 존으로 나눈다. 일본정원·분재원·쇼와천황기념관이 자리한 A존(녹색문화존), 기획전시가 열리는 B존(전시시설존), 한때 레인보우풀이 있던 C존(물의존), 11ha 규모의 잔디광장 ‘미나노하라파(모두의 들판)’와 14km 자전거코스를 품은 D존(광장존), 자연회복림과 버드생추어리로 이루어진 E존(숲의존)이다. 다섯 존을 가로지르는 은행나무길은 매년 가을이면 공원을 대표하는 풍경으로 손꼽힌다. 1983년 1기 개원 이후 서다치카와 출입구·레인보우풀(1985), 버드생추어리(1987), 일본정원(1997), 분재원 증설(2004), 미도리문화존·쇼와천황기념관(2005), 다카마쓰 출입구(2014)까지 30년에 걸쳐 존을 하나씩 채워 온 셈이다.

국영쇼와기념공원의 전경 이미지

관리운영 모델 — 국가 직할과 지정관리자, 그리고 시장의 시험

재원 구조는 다운스뷰의 ‘교차보조(cross-subsidy)’ 모델과는 다른 결을 보인다. 부지 조성과 큰 틀의 관리는 국토교통성이 국가 예산으로 직접 시행하고, 일상적인 운영·서비스는 일반재단법인 공원재단이 지정관리자제도에 따라 맡는다. 공원재단은 1983년 개원 때부터(중간 공백기를 제외하고) 6곳 4.5만㎡ 규모의 화단에서 계절별 꽃 릴레이를 조성하고, 네덜란드 큐켄호프 공원의 원예가를 초청해 튤립 경관을 가꾸며, 가을 은행나무길 야간 개장과 지역 축제 연계 행사를 운영해 왔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에는 약 1,000명의 귀가곤란자를 공원에 수용한 경험도 있다.

다만 이 모델에도 그늘은 있다. 개장 이래 여름철의 상징이었던 레인보우풀(1985년 개장, 6.3ha·9개 풀)은 이용객이 2019년 연 15만 명 아래로 줄고 급수관 노후화 등 시설 한계가 겹치면서 2020년 코로나19를 계기로 휴업에 들어갔고, 2023년 7월 완전 해체가 확정되었다. 국토교통성은 이 부지를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Park-PFI(공모설치관리제도) 방식의 ‘친수공간’으로 재정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2025년 상반기 아키시마 출입구 일대 재정비·관리운영사업 공모는 참가 표명자가 없어 무산되었다. 국가가 설계하고 재원을 대는 공공주도형 모델의 안정성과, 그 안정성이 때로 시설 갱신의 속도를 늦춘다는 현실이 함께 드러나는 대목이다.

오늘의 쇼와기념공원 — 이용 프로그램과 방재거점의 이중성

개념의 태생과는 별개로, 쇼와기념공원은 ‘실제로 잘 쓰이는’ 공원이다. 11ha의 미나노하라파는 대형 잔디밭 행사와 반려견 동반 공간으로, 14km 자전거코스는 렌털 자전거를 탄 가족 단위 이용객으로 늘 붐빈다. 봄에는 튤립과 네모필라, 가을에는 은행나무길과 코스모스가 계절 축제의 무대가 되며, 디스커버리 센터를 통한 환경교육 프로그램은 매년 다치카와·아키시마 지역 학교의 현장학습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일상적 활력 덕분에 공원은 2022년 4월 개원 39년 만에 누적 입장객 1억 명을 돌파했다.

동시에 이 공원은 언제든 방재거점으로 전환될 수 있는 이중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평상시에는 시민의 여가 공간이지만, 남관동 직하지진 등 수도권 대규모 재해가 발생하면 인접한 다치카와 광역방재기지와 함께 인원·물자의 항공 수송 중계지이자 광역 피난장소로 즉시 전환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국가도시공원이 평시의 삶의 질과 비상시의 안전망을 한 부지 안에서 동시에 책임지는 이 모델은, 아직 방재 기능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한국의 국가도시공원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 맺으며

쇼와기념공원의 43년은, 국가가 대규모 공원을 ‘어떻게 짓는가’ 못지않게 ‘무엇을 위해 짓는가’를 되묻게 한다. 국제설계경기의 화려한 다이어그램 없이도, 이 공원은 원지형을 존중한 온건한 계획과 국가 직할의 안정적 재원, 그리고 재해 대응이라는 또 하나의 존재 이유를 통해 반세기 가까이 도시의 신뢰를 얻어 왔다. 물론 레인보우풀의 폐쇄와 Park-PFI 공모의 무산이 보여주듯, 공공주도형 모델도 노후한 시설을 어떻게 갱신할 것인가라는 숙제 앞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다운스뷰가 시장의 활력으로 대규모 공원의 완성을 실험한다면, 쇼와기념공원은 국가의 책임으로 그 지속을 실험한다. 평시의 공원이자 비상시의 기지라는 이 이중의 얼굴이야말로, 국가도시공원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쇼와기념공원이 던지는 가장 실질적인 질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