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병열 에세이 l 설날의 소중한 가치를 잃지 말자

전병열 에세이 l 설날의 소중한 가치를 잃지 말자

공유

“평소 1시간 정도의 거리를 무려 3시간 동안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고속도로에서 보내면서도 산소를 다녀와야 한다는 일념으로 후손의 도리를 지켜왔습니다.”

전병열 언론학박사/수필가

사상 초유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정치 불안과 끝 간데없는 경기 불황 속에서도 설날은 찬란한 햇빛으로 새로운 희망을 품고 온 누리를 장엄합니다. 예년과 달리 우울한 그늘이 세상을 덮고 있지만, 먹구름을 뚫고 힘차게 솟아오른 태양을 향해 두 손 모아 새해의 안녕을 빌어봅니다.

우리 전통문화의 중심에는 설날이 있습니다. 설날은 한 해의 시작을 기념하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조상을 기리며,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중요한 명절입니다. 어릴 적에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부모님과 집안 어른께 세배를 올린 후 조상님 차례를 지냈습니다. 추운 날씨임에도 이른 아침 마당에 멍석을 펴고 어른들과 함께 제사를 지내면서 시린 발을 동동그린 기억이 납니다. 입김으로 언 손을 녹이며, 양 볼이 얼어붙는 것처럼 추웠지만 참고 견뎌냈습니다. 선조께 불경을 저지르는 것 같아 싫은 내색을 나타낼 수가 없었습니다.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의미가 있어, 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떡국을 차려 주셨습니다. 차례를 마친 후에는 아버님을 따라 성묘를 다녀왔습니다. 살을 에는 것 같은 추위에도 아버님을 따라 조상의 산소를 찾아 10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쫓아다닌 추억이 새롭습니다. 조부모님 산소가 각기 10리 길에 있었지만 자동차가 없던 시절이라 걸어서 다녔습니다. 성묘를 다녀오면 동네 어른들을 찾아 세배하러 다녔습니다. 어른들로부터 덕담을 듣고 세뱃돈을 받기도 했습니다. 설날에는 지켜야 할 어김없는 절차였으며,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설날의 이 같은 전통은 자신의 뿌리를 되새기게 하고 가족 간의 유대를 더욱 깊게 만듭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외에도 연을 날리거나, 윷놀이를 즐기며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한 설날을 보냈습니다. 설날은 단순히 새로운 해의 시작을 알리는 명절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며 전통과 문화를 되새기는 중요한 시간으로 새해를 축복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설날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명절로, 가족과 함께 보내며 우리의 전통문화를 기념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정치 불안이나 경제 불황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설날의 의미와 따뜻함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불안한 시국에도 아랑곳없이 공항에는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이 줄을 잇고 관광지의 호텔들이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명절의 전통문화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명절 차례를 지내는 가정들보다 여행을 떠나는 가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상을 섬기는 것보다 현재의 즐거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대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을 지키려는 윗대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고 오히려 터부시되는 처지가 되고 있습니다. 명절을 맞이하는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의 의미가 다를 수는 있습니다. 긍정과 부정의 문제가 아니라 수용과 거부의 문제일 것입니다. 개인주의의 가부장적인 문화의 차이기도 합니다. 가족 간의 유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자유로운 개인 생활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시대임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전통문화의 가치를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조상 대대로 지켜 내려온 고유의 정신문화만은 지켜야 합니다. 현실에 맞게 생활하되 설 명절의 고유 의식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휴가가 아니라 조상을 섬기고 가족 간의 유대를 생각하는 명절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뿌리를 의식하는 설날이 돼야 합니다. 전통 명절의 본질을 벗어나 나만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한다면 비단 설날이 아니라도 가능할 것입니다. 설날만큼은 전통 의식을 잊지 말고 즐기자는 생각입니다. 비록 생활 행태는 현대적 의미로 변할지언정 설날의 정신만은 절대 잊지 말자는 생각입니다.

철야 근무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지만, 설날이니까 고향을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교통지옥이라고 할 정도의 만원 버스를 비집고 탄 기억이 납니다. 성인이 된 후로도 평소 1시간 정도의 거리를 무려 3시간 동안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고속도로에서 보내면서도 산소를 다녀와야 한다는 일념으로 후손의 도리를 지켜왔습니다. 당연히 명절은 가족과 함께 보내고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한다는 사명감이 최우선인 세월을 살았습니다. 지금도 그 정신만은 잃지 않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