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는 후손의 의무요, 당연한 도리임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세대 간 문화의 차이라고 이해하려 하지만, 서운한 감정을 감출 수는 없었다”

고향은 추석을 맞이하며 어김없이 황금물결로 넘실거린다. 들녘의 익은 벼들이 올해는 유난히 짙은 황금빛을 띠며 나를 반기는 듯하다. 아련한 추억들이 가슴 뭉클한 감회로 다가온다. 가슴 깊이 알알이 박혀 있는 기억들이 동심의 세계로 이끄는 고향은 내 마음의 안식처다. 일주일간의 연휴에 징검다리 휴일까지 더하면 최장 10일간, 고향의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기회다.
“저는 부산에서 지내는 게 더 좋아요. 여긴 아빠의 고향이지, 제 고향은 아니거든요.” 온 가족이 함께 고향 땅을 누비며 그 시절을 되새길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내 고향이지, 아내와 아이들의 고향은 아니라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고향을 고집한 것이 계면쩍었다. 부모님의 고향이 곧 내 고향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온 가부장적 세대의 나에게, 개성이 강한 아이들에게는 그 모습이 옹고집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고향이 특별하겠지만, 아이들은 여기가 낯설기만 해요. 그냥 집에서 쉬게 해줘요.” 아내의 말은 현실적이었다. 도회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아늑한 고향의 정을 느끼지 못한다. 부모를 따라 이곳저곳 옮겨 다닌 경우, ‘고향’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수 있다.
연휴 때 하려고 미뤄둔 벌초를 추석 전 이틀간에 하기로 계획했다. 고향집에 도착하자마자 예초기를 챙겨 나섰지만, 함께 갈 가족이 없어 난감했다. 아들은 임용시험 준비로 독서실에 가야 했고, 아내는 집안 정리로 바쁘다며 투정을 부렸다. 혼자 가야 했지만 숲이 우거진 산중이라 불안했다. 다행히 이웃에 사는 친척이 동행해주기로 해 먼저 조부님 산소를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설과 추석마다 찾아 성묘하던 조부 묘소로 가는 길이 사라진 것이다. 숲이 우거져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마을 뒷산 중턱에 있던 밭은 경작자가 없어 잡초만 무성해, 길조차 묻혀버렸다는 동네 주민의 설명이었다. 조부 묘소 인근에 묘지들이 있었다는 기억을 더듬어 길을 묻자, 동네 옆으로 새로 난 길이 있다며 안내해주었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갔지만 중도에 숲에 막혀 길이 끊겼다.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아 덩굴을 헤치고 나아갔지만, 묘소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길을 헤매다 친척과도 떨어졌다. 당황한 나는 숲속을 이리저리 쫓아다녔고, 예초기는 짐이 되었으며 온몸은 땀범벅으로 탈진할 지경이었다. 털썩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며 방향을 다시 짐작해 헤쳐 나갔다. 겨우 친척을 다시 찾았지만 기력이 소진되어 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 하산하기로 했으나 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전신이 긁히고, 구르며 간신히 농장을 찾아내 무작정 길을 따라 내려갔다. 농장에는 소들만 낯선 사람을 바라볼 뿐, 인적이 없었다. 더는 산 비탈길을 오를 수 없어 벌초를 포기하고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아내에게 조난 신고를 했더니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지금 산에서 길 잃은 거야? 빨리 119에 전화해요! 스마트폰으로 위치부터 파악하고.” 그때 소들 사이로 농장 주인이 걸어 나왔다.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워 달려가 이곳이 어디냐고 묻고, 주차 위치와 가는 방향을 물었다. 35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는데, 아내는 계속 택시를 부르라며 전화가 빗발쳤다. 결국 걸어서 주차한 곳에 도착했고,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정말 아찔한 경험이었다. 또 하나의 추석 명절 추억으로 기록됐다. 어쩔 수 없이 조부 벌초는 포기하고 조모 묘소만 성묘하고 돌아오니 오후 7시 30분, 어둑어둑한 저녁이었다. 자주 찾지 못한 불효로 묘소로 가는 길을 잊은 아픈 추억을 이번 추석에 기록한다.
즐거운 고향길이 자칫 위험했지만, 선조를 향한 마음이 위기를 극복하게 했다. 가족들은 이런 마음을 모르고 시대가 변했다며 적당히 하라고 아우성이다.
“아빠, 그런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요즘엔 다 간소하게 해요.” “당신 마음은 알겠지만, 아이들한테 강요하지는 말아요. 시대가 달라졌잖아요.” 벌초는 후손의 의무요, 당연한 도리임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세대 간 문화의 차이라고 이해하려 하지만, 서운한 감정을 감출 수는 없었다. 후손이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뿌리를 존중하는 세대로서는 불효 막심이다.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감정적으로는 용납이 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가문의 전통을 이해할 것으로 기대하며, 추억으로 간직할 수밖에 없다. 조부님께서도 이해해주실 것이라 믿으며, 즐겁게 행복한 추석을 맞이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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