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송정인 남경산업(주) 대표이사
이명이 기자 lmy@newsone.co.kr
2014년, 조심스러운 첫 발을 내딛은 부산부전로타리클럽. 그가 처음 로타리안이라는 이름을 달고 봉사의 길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굳건한 소명의식을 갖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덧 11년. 그는 이제 누구보다도 로타리를, 봉사를, 사람을 이야기하는 이가 됐다.
국제로타리 3661지구 4지역 대표로서 자신의 지난 시간을 “봉사를 통해 자신을 발견한 여정”이라고 말한다.

봉사를 통해 인생의 방향을 찾다
그가 로타리안으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은 부산부전로타리클럽 조영환 역대 회장과의 인연 덕분이었다. “정말 고마운 분입니다. 그 인연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당시 그는 회의적인 마음과 생소함 속에서 클럽에 가입했다.
“한두 해는 참 어색했죠. 과연 내가 이런 봉사를 해낼 수 있을까?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봉사가 낯설었어요. 어쩌면 제 자신도 낯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변화했다. 클럽 활동에 차차 익숙해졌고, 동호회 활동을 통해 회원들과의 유대가 깊어졌다. 무엇보다 ‘봉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자,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 확신은 마침내 그를 부산부전로타리클럽 39대 회장이라는 자리로 이끌었다. 그것도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한가운데에서였다. “말 그대로 분에 넘치는 기회였죠. 무섭고 두려웠지만, 용기를 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그는 위기 속에서도 회원들과 힘을 합쳐 역대 최고의 봉사 실적을 기록했고, 클럽의 단합과 의미 있는 성장을 이끌었다. “결국 제게 힘을 준 건 함께했던 분들이었습니다. 역대 회장님들과 회원님들이 저를 믿어주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이러한 봉사 여정은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를 눈여겨본 덕정 조길제 회장과 청마 김윤호 회장의 추천으로 그는 3661지구 4지역 대표로 발탁되었다.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죠. ‘등불호’라는 이름처럼, 총재님의 리더십 아래서 봉사의 의미를 더욱 깊이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귀 기울이고, 직접 뛰는 대표가 되다
4지역 대표로서의 소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각 클럽의 상황은 제각기 달랐고, 봉사를 둘러싼 환경과 여건도 제약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분명한 원칙 하나를 세웠다. “잘 듣고, 같이 움직이자”는 것이었다.
“지역대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클럽의 목소리를 듣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와야 할 일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움직여야 할지를 파악하려면 무엇보다 경청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현실적인 성과로도 이어졌다.
그가 주도하거나 조율한 주요 봉사활동은 4지역 합동 김장 나눔 봉사, 동구복지관 어르신 급식봉사, 부산진구 초읍동 · 전포동 · 당감동의 주거환경 개선(집수리) 사업 등 이외에도 크고 작은 봉사활동이 쉼 없이 이어졌다. 그는 “경험 많은 역대 회장님들의 고견과 회원들의 성실한 참여 덕분에 95% 이상의 실행률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일부 프로젝트는 여전히 지속 중이며, 점차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봉사는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 결과는 반드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현실의 벽 앞에서도 진심을 잃지 않다
그는 인터뷰 내내 여러 번 ‘안타까움’이라는 표현을 썼다. 특히 침체된 지역경제에 대한 현실적인 걱정은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였다.
“회원님들께서는 정말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모든 걸 다 해내긴 어려웠어요. 그런 부분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원칙으로 정성을 쏟았고, 때로는 자신의 자원을 아낌없이 들였다. 그런 과정 속에서 그가 가장 깊이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동구복지관 어르신 급식봉사 중 있었던 일이다.
“한 어르신이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오셨습니다. 저희가 부축해 드리며 자리에 앉히려는데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나는 이렇게라도 와서 먹지만, 집에 누워 꼼짝 못하는 사람은 어쩌누?’”
그 말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울림을 남겼다. “저희가 보지 못한 사각지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더 세심하게, 더 깊이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다짐을 했죠.”
삶은 성실하게, 봉사는 꾸준하게
그는 조선용접기자재를 제조하는 전문업체를 30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다. 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엔지니어로 평생을 살아온 그는 어느덧 유수 대기업의 1차 협력업체로 자리 잡으며 산업 현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자수성가한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둔 가장이기도 하다. “여우에서 호랑이로 변한 아내와, 무뚝뚝한 이공계 아들들과 하여가를 부르며 사는 중”이라는 그의 유쾌한 표현에서 소탈한 인간미가 묻어난다.
그의 인생 철학은 간단하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절차탁마(切磋琢磨)처럼 노력과 성실이 제 삶의 모티브입니다.”
뚜벅뚜벅, 끝까지 함께 걷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간결하면서도 단단했다.
“앞으로도 로타리안으로서의 명예를 지키며, 봉사에 매진할 겁니다. 또 제 개인적인 목표도 다르지 않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뚜벅뚜벅 걷는 것. 성실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는 자신이 맡았던 4지역 대표직에 대해 “잘한 것보다 아쉬움이 더 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더 잘하고 싶었다는 뜻일 것이다.
“제가 잘한 게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함께했던 분들 덕분입니다. 역대 회장님들의 경륜, 당대 회장님과 총무님, 사무국장님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그의 말처럼 봉사는 ‘하는 사람’이 더 큰 효용감을 얻는 행위다. 그는 오늘도 로타리 마크가 새겨진 조끼를 입고, 어느 현장에서든 묵묵히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 발걸음은 결코 빠르지 않지만, 단단하고 진실하다. 로타리의 정신은 어디에나 있으며, 누군가의 조용한 실천 속에 더 크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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