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자 명문서 제작 시기·무기명·무게·감독자·장인 정보 판독…1377년 또는 1437년 제작 추정
엄경종 기자 ogz@newsone.co.kr

나주 금성산에서 발견된 화약무기 ‘황자화통(黃字火筒)’의 제작 시기와 제작자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명문이 판독됐다. 연구 결과 이 유물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화약무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공개회를 열고 나주 금성산에서 발견된 황자화통의 조사·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황자화통은 2023년 11월 나주 금성산 ‘미확인 지뢰지대’에서 등산로 공사를 앞두고 진행된 지뢰 탐지 과정에서 발견됐다. 길이 23.75㎝, 구경 1.66㎝, 무게 1,032g으로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소형 화기로 확인됐다.
나주연구소는 이후 3년간 과학적 분석과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유물의 명문을 판독하고 제작 시기와 형태, 재질 등을 조사했다.
황자화통에는 모병에 6열 27자, 총부리에 1자 등 모두 28자의 음각 명문이 남아 있다. 연구소가 판독한 명문은 ‘정사십이월일 연 황자화통 중일근십사량 감조녹사안휴보 장인석’이다.
이를 풀이하면 ‘정사년 12월에 황자화통을 만들었으며 무게는 1근 14량, 제작 감독자는 녹사 안휴보, 장인은 석’이라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무기의 이름과 무게뿐 아니라 제작을 감독한 관직과 인물, 장인의 이름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총부리에 새겨진 ‘팔(八)’은 별도의 제작 번호나 관리 번호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연구소는 보고 있다.
‘황자화통’에서 ‘황자’는 천자문 순서에 따라 사물을 분류하던 고려·조선시대 명명 체계와 관련된 것으로 분석됐다. 또 명문에 등장하는 ‘감조’는 제작 감독자를, ‘녹사’는 관서의 실무를 담당하던 관직을 뜻한다.
고려 말 군기감에 녹사가 배치돼 무기 제조와 관련된 업무를 맡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도 군기감 소속 녹사가 무기 주조를 담당한 기록이 확인된다. 연구소는 황자화통의 명문이 당시 국가가 무기 제작을 관리·감독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보고 있다.
다만 명문에 적힌 ‘정사(丁巳)’년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관련 문헌과 우리나라 화약무기 발달사를 종합하면 1377년 고려 우왕 3년 또는 1437년 조선 세종 19년으로 제작 시기를 좁힐 수 있다.
1377년은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이 설치돼 국가 차원에서 화약무기 생산이 시작된 해이며, 1437년은 세종대 화약무기 개량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기다. 연구소는 현재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두 연도 가운데 어느 시기에 제작됐는지는 확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황자화통의 형태 역시 초기 화약무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약통 내부가 둥근 형태로, 화약과 발사체를 하나의 통에 넣어 발사하던 초기 화기의 구조와 유사하다. 반면 조선 세종대 격목을 사용해 발사 효율을 높인 개량 화기의 약통과는 형태상 차이가 있다.
재질 분석에서는 구리와 주석, 납을 주성분으로 하는 청동 주조품으로 확인됐다. 특히 주석 함량을 10wt% 이내로 조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청동의 강도와 연성을 확보해 화약 폭발 때 화통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한 기술로 분석됐다.
미세조직에서는 제련 과정에서 남은 황과 규소, 은 등의 불순물도 확인됐다. 연구소는 이 같은 성분과 미세조직 분석 결과가 전통적인 청동 주조 방식으로 제작된 유물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나주연구소는 오는 23일부터 11월 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견 유물 속보전을 열고 황자화통을 일반에 공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물의 발견 과정과 조사·분석을 통해 확인된 연구 성과도 함께 소개할 예정이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앞으로도 과학적 조사와 보존처리를 통해 나주 지역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고 관련 연구 성과를 국민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